올해에도 예년과 같이 빨리 다가온 더위, 삼복더위를 웃도는 30도가 넘는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전국의 모든 해수욕장은 이미 오픈한지 오래되었고, 농민들은 100여년 만에 찾아온 극심한 가뭄으로 가슴이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남들이 함께 떠나는 복잡한 시즌을 피해, 작년부터 가족과 함께 일찍 다녀오고 있다. 올해에도 아들이 평창 알펜시아 리조트에 사전예약을 해서, 편안한 마음으로 23일의 휴가를 떠난다.

  이름도 생소한 알펜시아(Alpensia) 리조트는 2018년 개최되는 동계 올림픽의 주 장소로 사용하기 위해 강원도 개발공사가 지었다고 한다. 알펜시아는 독일어로 알프스(Alps)를 뜻하는 알펜(Alpen)과 아시아(Aisa) 및 판타지아(Fantasia)의 뒷부분을 조합시킨 단어로, 환상적인 아시아의 알프스라는 뜻을 지녔다고 한다. 폭우의 단비지만, 힘든 운전 끝에 무사히 도착하여 수속을 밟는다. 23일의 일정 중 오늘은 리조트에 여장을 풀고서 강릉으로 넘어간다.

  아들이 인터넷을 통해 맛 집과 관광지를 검색해 와, 편하게 이동만 하면 된다. 우선 일찍 오느라 아침식사가 부실한데다 점심마저 늦어, 허기진 배부터 채우러 간다. 경포 해수욕장 안쪽에 있는 강릉초당 두부마을을 찾는다. 최초 한글소설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의 부친인 초당 허협이 집 앞에 있는 샘물 맛이 좋아, 이 물로 콩을 가공하고 바닷물로 간을 맞추어 두부를 만들었다. 맛이 좋기로 소문이 나면서 현재의 초당 두부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계속 이어지는 많은 두부 집 가운데, 소문난 집만 손님이 많고 맛 또한 있었다. 아이들이 지금의 손자만한 때에 가족과 함께 여름휴가를 와서 재미있게 보냈던 추억의 경포해수욕장으로 간다. 옛날에는 눈에 띄던 큰 비치호텔이었는데, 지금은 주위의 건물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는다. 오전까지 내린 폭우의 영향인지, 온도가 내려가고 바람마저 강하게 불어 바닷물에 들어 갈 수가 없다. 해변에서 손자와 함께 밀려드는 파도에 발을 적시는 정도다.

  이후에도 이곳 경포 해수욕장을 많이 찾았지만, 바닷가에만 머물다 급히 돌아가느라 아담한 동산에 한 번도 오르지 못했다. 오늘은 여유를 가지고 관동팔경(關東八景)중의 하나라고 하는 경포대(鏡浦臺)에 올라 경포호수를 내려다보기로 한다. 경포대 외에 통천의 총석정, 고성의 삼일포, 간성의 청간정, 양양의 낙산사, 삼척의 죽서루, 울진의 망양정, 평해의 월송정을 관동팔경이라 한다. 월송정 대신 흠곡의 시중대를 넣는 경우도 있다.

  팔경의 공통점은 모두 바다와 면하고 있는 자연경관과 그 곳에 있는 누대(樓臺)가 조화를 이뤄 아름답다고 한다. 도 유형문화재 6호인 경포대에 올랐더니, 넓은 경포호수와 해수욕장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동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넓고 깨끗한 누()는 옛 선인들이 주안상을 앞에 놓고 시를 읊던 모습이 떠오른다. 높지 않은 동산에는 넓은 평지와 숲도 있어 여행에 지친 몸을 잠시 쉬었다 가도 좋을 장소인 듯싶다.

  다음 코스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손자를 위해 오죽헌에 들린다. 모두 몇 번씩 다녀온 곳이지만, 옛날의 추억도 떠 올리면서 걸어보기로 한다. 많이 알려진 이곳은 우리 겨레의 어머니라고 일컫는 신사임당과 아들 율곡(栗谷) 이이()선생께서 태어난 곳이다. 짧은 생애(48)를 마치신 사임당 신씨(1504~1551)는 성품이 어질고 착하며, 효성이 지극하고 지조가 높았다. 어려서부터 경문(經文)을 익히고, 문장, 자수 뿐 만아니라 시문, 그림에도 뛰어났다고 한다.

  우리나라 제일의 여류 예술가라 할 수 있으며, 자녀교육에도 남다른 노력을 기우려 현모양처의 귀감이 된다. 이이 선생(1536~1584)은 어려서부터 어머니에게서 학문을 배워 13세에 진사초시에 합격하고, 아홉 번 과거시험에 모두 장원급제 하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을 남겼다. 이조, 형조, 병조의 판서를 역임한, 조선 유학계에 퇴계 이황 선생과 쌍벽을 이룬 대학자이다. 검은 대나무가 뒤뜰에 많이 자라고 있어, 오죽헌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1788년 정조임금은 율곡선생이 친필로 쓴 격몽요결과 어렸을 때 사용하던 벼루를 직접보고 격몽요결 서문과 벼루 뒷면에 글씨를 써서 돌려보내며, 별도의 집을 지어 보관토록 하였다. 어명으로 지었다고 하여 어제각(御製閣)이라 부른다. 사용 중인 오천원권 지폐 앞면에는 율곡선생을 뒷면에는 오죽헌과 여기에 전시된 벼루가 도안되어 있다. 최근에 나온 오만원권 지폐에도 신사임당이 등장해, 모자가 각각 화폐에 나오기는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라 한다.

  안채와 바깥채의 모습은 1996년 정부의 문화재 복원계획에 따라 옛 모습 그대로 복원되었다고 한다. 문성사는 율곡선생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문성(文成)은 인조임금이 내린 시호로 도덕과 학문을 널리 들어 막힘이 없이 통했으며, 백성의 안정된 삶을 위하여 정사(政事)의 근본을 세웠다는 의미라 한다. 별당 건물인 오죽헌 왼쪽의 마루방은 율곡이 여섯살 때까지 공부하던 곳이며, 오른쪽 방은 신사임당께서 율곡을 낳은 방으로 사임당의 영정이 있다.

  할머니가 옆에 따라다니면서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었기에, 손자에게는 산교육의 현장으로 오래 기억에 남기를 바라면서 인근의 선교장(船橋莊)으로 향한다.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어 입장이 가능할 줄 알았는데, 오후 6시를 넘겨 입장이 불가능하다. 처음 와 보는 선교장이기에 기대를 했는데 아쉽다. 먼발치로 300년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가는 전통가옥들을 본다. 전통음식점, 한옥숙박체험, 민속놀이마당 등 다양한 볼거리가 많다는데 다음을 기약한다.

  저녁식사를 위해, 맛 집을 찾아 해안선을 따라 북으로 이동한다. 젊은 시절 직장에서 하기휴양소를 설치해 자주 왔던 사천해수욕장과 사천어항을 지나 검색된 횟집을 찾는다. 주 메뉴 이전에 나오는 밑반찬들이 상이 가득하도록 양은 많지만, 먹을 만한 것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와서 먹기에는 충분한 양이 될 듯싶다. 푸짐하게 나오는 회를 담고 있는 쟁반이 특이하다. 동해 밤바다를 보며 맛있는 식사를 하고 대관령을 다시 넘어 숙소로 돌아와 여행일정 중 하루를 마감한다.

 

 

                                     2012. 6. 30. 강릉 경포대를 다녀와서.....

 

 

 

 

 

Posted by 프코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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