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10경중 1경인 팔영산 산행을 마치고, 덤으로 얻은 2경인 소록도로 향(12:00)한다. 보리 고개를 겪었던 세대들은 어린 초등학교 시절에 한센병과 관련된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산과 들이 온통 푸른 보리밭 물결로 일렁이는 따뜻한 봄날이면,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어린가슴을 두근거리게 하였다. 문둥병 환자가 보리밭에서 나와, 어린이를 잡아가 희생시켜 자신의 병을 고친다는 이야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고흥 10경중 2경인 안내판 >
사용자 삽입 이미지
                            < 녹동항 수정횟집 >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주 메뉴 나오기 전 식단 >  
  어릴 때의 두려움이 많은 세월이 지났는데도 잊혀지지 않고 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당시는 어려웠던 보리 고개가 있어 한 끼 식사도 제대로 못하던 시절이었다. 이때에 환자들이 허기를 채우려 구걸에 나섰던 것을 경계하기 위해 나온 헛소문인 듯싶다. 고흥반도의 남단에 위치한 녹동항은 아담한 규모의 작은 항구이다. 점심을 하고 소록도로 가기 위해 부둣가에 있는 수정횟집에 들려 단체로 매식을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녹동항 여객터미널 모습 >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앞에 있는 소록도와 소록대교 >
사용자 삽입 이미지
                          < 녹동 유람선 안내도 >  
  인원이 많다 보니, 한 음식점에서 소화 할 수 없어 일부는 다른 곳에 간다. 식당 3층 차창너머로 보이는 섬이 소록도라 한다. 가까운 거리를 옛날에는 이곳 여객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건넜다고 한다. 옆으로는 작년에 개통되었다는 소록대교의 모습도 보인다. 신선한 해산물과 회 그리고 소주 한잔이 산행에서 오는 피로를 풀어준다. 주변의 섬을 한 바퀴 도는 유람선 안내도가 이지역이 관광지임을 말해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국립소록도병원 안내소 >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수탄장(愁嘆場) >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소나무 숲길 >
  녹동항을 출발(14:00)하여, 작년 3월에 개통 된 1,160m의 연륙교 소록대교를 건넌다. 소록도(小鹿島)의 이름은 그 형상이 작은(小) 사슴(鹿)과 같다하여 붙여졌고, 아기 사슴같이 아름다운 섬이란 뜻도 있다. 주차장 옆 안내소를 지나 수탄장 길로 접어든다. 환자인 부모와 미감아 아동이 격리 되어, 한 달에 한번 양쪽 도로 끝에서 만나던 탄식의 장소이다. 애한의 장소가 아름다운 소나무 숲길로 변하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해안선과 백사장 >
사용자 삽입 이미지
                          < 개원 50주년 기념비 >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추모비(追慕碑) >
  면적 4.46㎢의 작은 섬은 짧은 백사장이 운치를 더하고, 주위는 깨끗하고 조용하여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먼저 개원 50주년 기념비를 만나게 된다. 1916년 조선총독부가 한센병 환자들을 위한 자혜병원으로 정식 개원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환자들을 강제 분리.수용하기도 하면서 50년이 되는 1966년 5월에 비를 세웠다고 한다. 해방을 맞으며 자치권을 요구하다 처참하게 학살된 84명을 위한 추모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꽃무릇(상사화) >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일반인 출입금지 구역 >
사용자 삽입 이미지
                           < 리모델링 중인 병원 >
  참사 56년만인 2001년 유골 발굴 작업을 통해 알려졌고, 학살당했던 현장에 2002년 세웠다고 한다. 이러한 슬픈 사연을 알리려는 듯, 가까운 꽃밭에 슬픈 사연을 가진 꽃무릇이 활짝 피어있다. 환자가 거주하는 지역은 출입이 통제되어, 더 갈수가 없다. 병원의 직원 등 환자가 아닌 사람들이 거주 하는 관사지대와 환자들이 거주하는 병사지대로 구분이 된다. 리모델링 중인 병원을 지나 중앙공원으로 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중앙공원 안내도 >
사용자 삽입 이미지
                             < 감금실(監禁室) >
사용자 삽입 이미지
                             < 공원 입구 전경 >
  완도 등에서 운반된 기암괴석과 일본.대만 등지에서 들여온 나무들을 조화롭게 배치하였다고 한다. 6,000여평 크기에, 환자들의 피와 땀으로 4개월여 공사로 1940년 4월 완성되었다. 붉은 벽돌로 높은 담을 쌓아 교도소처럼 보이는 것이 감금실이다. 일제 강점기에 환자들을 불법적으로 감금, 감식, 금식, 체벌 등을 한 인권유린 의 장소이다. 오랜 세월동안 슬픈 사연을 보고 자란 나무들이 반겨주는 공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다미안 공적비 >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오스트리아 수녀 공적비 >
사용자 삽입 이미지
                            < 구라 탑(救癩 塔) >
  공을 세운 벨기에 다미안 공적비와 오스트리아 수녀 공적비가 눈길을 끈다. 외국인이 이곳 소록도까지 와서 환자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한 분들인 듯하다. 한편 강압적인 수단으로 환자들에게 공사를 시킨 일본인 수호 원장은 끝내 살해된다. 생전에 모금을 하여 동상을 세우고 참배까지 하게 했던 자리에는 안내판만이 그의 만행을 고발하고 있다. ‘한센 병은 낫는다’는 의지가 적힌 구라 탑이 세워져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중 앙  공 원 에 서  >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소록도 성당 >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연못 위의 성모 상 >
  어느 공원에서도 보지 못한 희귀 수종과 잘 가꿔진 수목에서 환자들과 직원들의 정성과 노력이 보인다. 눈에 띄는 성당을 비롯하여 개신교회, 원불교당 등의 종교 시설과 초등학교 분교, 우체국 등도 있다고 한다. 오랜 세월동안 섬에 격리되어 있으면서 겪어야만 했던 외로움과 서러움을 간직한 성당인 듯싶다. 연못 건너편의 성모상을 보고, 얼마나 많은 환자들이 기도를 올렸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숙연해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연못 안의 예수 상 >
사용자 삽입 이미지
                            < 한하운(韓何雲) 시비 >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소록대교를 보며... >
  연못 안에는 예수상이 과거의 모든 아픔을 간직한 체 계시다. 한하운 시인의 보리피리 시가 육중한 돌 위에 새겨져 있다. 섬 전체가 국유지로 일반주민은 없고, 대부분 65세를 넘긴 환자들은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과일농사, 가축사육 등의 기술도 배운다고 한다. 지금은 한센인에 대한 편견도 없어지고, 많은 봉사들이 찾아와 돕고 있다고 한다. 어린마음에서 무서워했던 기억을 오래 간직하였음을 부끄러워하며 소록도를 떠난다.



 





                                 ‘10. 09. 26. 소록도를 다녀와서.....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2.0 대한민국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Posted by 프코20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