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淸溪川)의 상류 11코스를 끝내고, 복개 공사가 순차적으로 되면서 판잣집이 늦게까지 있었던 하류 12코스를 간다. 학창시절인 1970년도에 지방에서 올라 온 한 학우가 신설동 부근에서 지낸다고 하여 놀러 갔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잠깐 들리었던 판잣집들이 즐비했던 하천 주변을 오늘 2부로 가는 청계천 2코스라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다. 당시는 8.15 광복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모두가 어려운 시절을 살았었고, 빈민들이 주로 살았던 판잣집에는 삶의 애환들이 녹아 있었다.

                        < 청계천 1. 2코스 경로 개념도 >

                    < 10:25, 오간수교 24번 출입구에서 2부 시작 >

                      < 10:28, 청계천 징검다리를 건너와 >

  111코스의 종착지인 동대문디지털플라자(DDP)를 둘러보고는 212코스를 시작하기 위해 오간수교 24번 출입구로 내려온다. 징검다리를 건너와 오간수문 있는 곳에서 출발이다. 개념도에 나와 있는 12코스 경로를 보면, 청계천 문화관판잣집 테마촌두물다리고산자교무학교비우당교황학교서울풍물시장(소요시간: 2시간30)순 이다. 12코스 시작지점인 청계천 문화관(지금은 이름이 바뀌어 청계천 박물관)이나 판잣집 테마촌을 많은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잘 모른다.

                               < 10:30, 색 동 벽 >

                          < 15번째의 다리인 맑은내 다리 >

                         < 10:38, 비상하는 왜가리의 날개 짓 >

  복사한 개념도를 자세히 살펴보니, 2코스의 시작지점이 1코스와 연결되는 것이 아니다. 만남의 장소도 청계천이 끝나가는 지점에 있는 청계천 문화관이다. 오간수교에서 황학교 사이는 1. 2 코스에서 제외되어 있어 맑은내다리(15번째), 다산교(16번째), 영도교(17번째)는 덤으로 보게 된다. 동대문 패션타운 부근에 설치한 색동 벽은 우리 고유의 색동 빛깔을 아름답게 표현했다. 청계천을 우리말로 바꾼 맑은내 다리이다. 막 수변 위를 박차고 비상하는 왜가리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 16번째 다산교 지나서 17번째의 다리인 영도교 >

                 < 10:41, 청계천 전구간 거리표시 이정표 >

                 < 10:45, 18번째의 다리인 황학교(黃鶴橋) >

  다산 정약용(丁若鏞)의 호를 붙인 16번째의 다리인 다산교(茶山橋)를 지나서, 청계천 7가와 8가 사이에 있는 17번째의 다리 영도교(永渡橋)를 만난다. 단종에 얽힌 슬픈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로 귀양 갈 때, 단종비 정순왕후가 이 다리까지 배웅 나와 이별했는데 다시는 만나지 못하고 영영 이별했다하여 영이별다리라 부르다가 성종 때 다리를 보수하여 영도교라 했다. 이곳 황학교부터 12코스 시작지점인 청계천 박물관까지도 코스는 아니다.

                         < 10:46, 황학교 아래 수문 >

                < 10:53, 황학교 지나 우측 길로 갔다 좌측 길로 왕복 >

                           < 10:54, 소망의 벽 >

  옛날 이곳 논밭에 황학(黃鶴)이 날아왔었다는 전설에서 비롯되어 이름지어진 황학교이다. 이 다리를 지나서는 최종 도착지 서울 풍물시장을 가기 위해서 돌아와야 하는 왕복구간이다. 모든 다리에 있는 것처럼 황학교 아래에도 미관상 수문에 문을 맞춰 달았다. 비가 많이 오면 문이 열리고, 시내에 내렸던 빗물들이 모여 쏟아진다고 한다. 소망의 벽은 청계천 복원을 기념하고 화합과 평화의 통일을 기원하는 2만 명의 아름다운 꿈과 소망의 마음을 담은 그림과 글이 부착되어 있다.

                   < 10:54, 소망을 담은 2만 명의 그림과 글 >

                        < 10:55, 제주도의 상징물 >

                   < 10:56, 19번째의 다리 비우당교(庇雨堂橋) >

  20056월 체결한 서울특별시와 제주도의 교류협정을 기념하고 청계천 복원을 축하하여 제주도의 상징물을 이곳에 설치했다고 한다. 종로구 숭인동에 조선 초기 정승을 지낸 유관(柳寬)이 비를 근근이 가리며 살 정도로 청빈하였는데, 조선 후기 실학자인 지봉(芝峰) 이수광(李晬光)이 이곳에 작은 집을 짓고 당호를 비우당(庇雨堂, 비를 가리는 집의 뜻)이라고 하여 청빈한 삶의 중요성을 알렸다고 한다. 청계천을 복원하면서 청빈의 정신을 살려 다리 이름을 비우당교라고 지었다고 한다.

                      < 10:59, 하늘 물터(존치 교각) 모습 >

                    < 11:02, 20번째의 다리 무학교(無學橋)

                         < 11:07, 건너편 청혼의 벽 >

  청계천 고가도로는 1971815일 개통하여 서울 도심의 교통난을 해소했으나, 노후화로 안전문제가 대두되어 2003830일 철거 완료되었다. 역사적 상징성과 청계천 복원의 의미를 부여하고자 교각 3기를 철거하지 않고 존치하였다. 조선시대 무학대사(無學大師)가 도읍을 정하기 위해 지리를 살피던 중 왕십리지역까지 왔으므로 도로명을 무학로로 하고 다리 이름도 무학교라 했다. 건너편 청혼의 벽에는 청계천에서 아름다운 사랑을 만드세요!문구와 함께 자물쇠들이 채워져 있다.

                 < 11:08, 청계판잣집을 체험하고 가라 한다 >

                < 11:11, 우측 도로로 올라오면서 본 21번째 두물다리 >

       < 11:13, 청계천박물관(옛명칭: 청계천문화관, 옥상에는 고가도로 상징 >

  청계판잣집 모형이 가는 길가로 튀어 나와서 체험하고 가라 한다. 구경하고 가려고 도로로 오르는데 21번째의 두물다리가 있다. 옛날에 청계천 지류가 합류되던 지점으로 두 개의 물이 만나는 다리라는 의미이며 다리모양도 서로 만나는 형상을 하고 있다. 경로 개념도에 2코스의 시작지점으로 된 청계천문화관은 청계천박물관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그 앞 길 건너에는 청계판잣집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박물관 건물은 청계천의 물길을 상징, 옥상은 고가도로를 형상화해 지어졌다.

                  < 11:21, 옥상부터 먼저 올라 구경하고 >

                < 11:22~11:34, 옥상 쉼터에서 간식을 먹으며 휴식 >

                < 11:35, 옥상에서 본 북한산()과 도봉산() >

  청계천 박물관으로 입장(11:14)했더니, 외부로 나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4층으로 올라가 그곳부터 구경하면서 내려오라고 한다. 고가도로를 형상화한 옥상이 궁금하여 한층 더 높은 옥상까지 올라간다. 옥상에는 작은 정원을 꾸며 놓고 쉴 수 있는 쉼터까지 마련해 놓았다. 쉼터에서 준비해 간 간식을 먹으면서 잠깐 쉬어 간다. 날씨가 오랜만에 청명하여 좌측에는 북한산의 백운대와 인수봉이, 우측에는 도봉산의 자운봉이 뚜렷하게 보인다. 아래는 청계천 하류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 11:37, 옥상 끝에서 본 두물다리 주변 풍경 >

                       < 12:01, 판잣집 테마촌 모습 >

           < 12:04, 두물다리 주변 안내도(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선명함) >

  4층으로 내려와 관람을 하는데, 층간 계단이 아닌 경사로 따라 보도록 했다. 청계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입장료는 무료다. 4층은 복원 후 10, 3층은 청계천 복원사업, 2층은 청계천과 청계로, 1층은 개천시대를 주제로 한 변천과정을 보여준다. 길 건너에 있는 판잣집 테마촌에 오니, 학창시절에 한두 번 들리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무허가 판자촌은 근대화 과정에서도 서울에 인구가 급증할 때마다 청계천은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쉴 자리를 내주었다.

              < 12:07, 정릉천과 합류하는 지점 위로 고가차도가 >

                  < 12:09, 22번째의 다리 고산자교(古山子橋) >

                 < 12:12, 더 이상 가지 않고 유턴하는 징검다리 >

  점점 잊혀져가는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 빈민들의 삶과 애환을 생생하게 볼 수 있게 하였다. 가정집의 모습부터 연탄가게, 구멍가게, 만화방 등의 모습들을 그대로 옮겨놓았는데, 안에는 들어 갈 수 없도록 자물통이 채워져 있어 아쉬웠다. 정릉천과 합류하는 지점 위에는 인터체인지인지 고가 차도가 지나간다. 마지막 22번째 다리 고산자교 아래는 넓은 휴식공간을 두어 쉬어가도록 했다. 1984년 조선시대 지도를 만든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의 호를 따서 이름 지었다고 한다.

             < 12:17, 유턴하여 건너편에서 본 박물관과 판자집 >

                < 12:26, 하류에는 더 많은 물고기들이 >

                 < 12:37, 성북천이 내려와 합류하는 지점 >

  고산자교를 지나서는 유턴을 해서 황학교로 돌아가야 하는데 아무런 표시가 없다. 청계천 박물관 직원의 설명으로는 청계천 길이 서룰 숲까지 연결된다고 하였지만 징검다리에서 유턴을 한다. 건너편에서 보는 긴 유리형태의 박물관 건물 모습이 청계천의 물길을 상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류에는 더 많은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노는 모습을 보니, 사라졌던 청계천이 복원사업을 통해 되살아나서 우리 곁으로 왔음을 실감케 한다. 정릉천에 이어 성북천으로 흐르는 개천을 징검다리로 건넌다.

             < 12:42, 황학교로 돌아와 계단을 올라 풍물시장으로 >

                 < 12:47, 큰 도로에서 우측 골목 안으로 >

                   < 12:53, 서울풍물시장 입구에서 >

  서울 풍물시장을 가기위해 지나가면서 보아 두었던 이정표가 있는 황학교까지 돌아온다. 계단을 올랐더니, 다리를 건너지 않는 반대 방향으로 직진하니, 우측에 서울 풍물시장 입구 안내판이 크게 달려 있다. 전에는(20133) 시티 투어버스를 타고 동묘근처의 도깨비 시장을 둘러보았는데, 입구의 거리는 그때의 모습과 같았지만 풍물시장은 시장 건물이 별도로 지어져 있다. 청계천을 복원하면서 일대에 있던 많은 주변 노점 상가를 정리해 2004년 동대문 운동장 축구장으로 이주시킨다.

            < 12:56, 시장 안 다양한 품목 등을 판매(의류, 잡화) >

                    < 12:57, 시장 내 빨강동 식당가 >

                   < 13:02, 어린이 장난감 가게 등등 >

  2006년 동대문 운동장이 공원화 되면서 운동장내에 있던 풍물벼룩시장은 철거되면서, 동대문구 신설동 옛 숭인여중 부지로 894개의 노점들이 이주하여 입주하게 된다. 2008426일 개장한 서울풍물시장은 우리민족의 전통적인 풍물거리와 청계천이 조화를 이루는 곳으로 일상에서 사용하던 생활용품, 관광상품, 토속상품, 민속 먹거리 등을 저렴하고 편안하게 먹고 즐길 수 있는 풍물 한마당이 어우러지는 시장이라고 한다. 시장 우측 문으로 나갔더니, 뒤풀이할 신설동역 10번 출구이다.

                      < 13:07, 뒤풀이 식당, 황박사 수원왕갈비 >

                        < 13:23, 수원 왕갈비집의 메뉴판 >

                       < 13:30, 주문한 돼지 갈비의 식단 >

  친구와 가족과 함께 자주 찾았던 음식점인데, 최근에 찾은 것이 3(20135)이 되었다. 휴일이면 손님이 많아 기다리는 것, 음식이 저렴하고 푸짐하며 맛있는 것은 변함이 없는데, 가격은 조금 인상된 것 같다. 돼지갈비 2인분을 주문했는데, 부수적으로 따라 나오는 차돌백이(돼지갈비보다 더 맛있음), 음료수 1, 천엽, 식사(물냉면, 비빔냉면, 된장찌개와 공기 밥은 주문하는 대로)까지 하면 배부르지 않을 수가 없다. 추억을 찾아 떠난 청계천 구경에 추억의 돼지갈비로 즐거운 하루가 되었다.

  

                                        ‘16. 6. 6(). 청계천 2코스를 다녀와서...

 

Posted by 프코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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