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탐방 일시: 2015925()

2) 탐방 코스: 금촌역900번 시내버스장릉삼거리 하차장릉(인조와 인열왕후)

             33 마을버스금촌역 환승64번 마을버스파주삼릉(공릉,순릉

                    영릉)60번 시내버스금촌역 환승900번 시내버스헤이리 마을

                    →2200번 광역버스합정역

3) 탐방 시간: 1020~1655(6시간35),         6.0km추정

4) 탐방 인원: 아내와 함께

5) 날 씨 : 맑 음

6) 탐방 후기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조선 왕릉 40기에는 장릉이 3기나 되어 처음에는 혼란스럽다. 사전 출입허가를 받아 오늘 가는 파주 장릉(長陵)16대 인조(仁祖)와 원비 인열왕후의 합장능이고, 내일가기로 한 김포의 장릉(章陵)은 인조의 생부(生父)인 추존 원종(元宗)과 인헌왕후의 쌍릉이다. 추석 이후 마지막 40번째로 예정된 강원도 영월에 있는 장릉(莊陵)은 단종(端宗)의 능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니, 경의선을 생전 처음 타게 된다. 이제는 중앙선과 연결되어 용문에서 문산까지 간다.

                < 조선 왕릉 분포도(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선명함) >

                  < 장릉 안내도(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선명함) >

              < 9:43, 타고 가는 경의선 전철 옆에 평화의 열차가 >

  서울과 신의주간 경의선(京義線)이지만, 분단이후 문산 까지만 운행되다가 2009년부터 수도권 전철구간이 되었다. 작년 말부터 중앙선과 직결되어 경의중앙선이라 불리는데, 기차도 못타봤고 전철까지 이제야 타게 되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군사분계선 이남의 역까지 운행되는 평화의 열차(DMZ Train)가 옆에서 같이 달리고 있다. 코레일에서 운영하는 관광열차로 특별한 모습을 해서, 타 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평화의 열차는 도라산역과 백마고지역까지 가는 두 코스가 있다고 한다.

           < 10:10, 금촌역(2번 출구로 나와 버스정류장으로) >

              < 10:45, 장릉삼거리(인삼사우나) 정류장 하차 >

                   < 10:55, 비공개 장릉 출입문 >

  가까운 5호선 지하철역을 출발(8:12), 공덕역에 도착(9:20)하여 경의중앙선 으로 환승한다2시간여가 소요되어 금촌역(10:07)2번 출구로 나와, 길 건너 버스정류장에서 900(통일전망대대화역)시내버스에 탑승(10:30)한다. 건너편에서 금촌역을 바라보면서 우측이 장릉이고, 좌측이 파주삼릉 방향이다. 장릉삼거리정류장(10:43) 이름은 인삼사우나로 바뀌었고, 상호가 현재는 홍삼스파사우나로 또 바뀌어 있다. 삼거리에서의 이정표는 900m, 걸어가니 10여분 소요되는 거리이다.

                 < 11:02, 느티나무 숲으로 울창한 진입로 >

                 < 11:04, 진입로 우측에 보수중인 재실 >

                < 11:06, 홍살문 직전의 금천교를 건너 >

  출입 허가서 답사시간을 1030분으로 했는데 예상 밖으로 시간이 오래 걸려 25분이나 초과되었지만, 능 안에 상주하는 관리인 전화번호를 알려주어 무난히 입장할 수 있었다. 넓은 산림 속에 위치한 왕릉의 진입로는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숲을 이루어 시원하게 해준다. 들어가면서 우측에 있는 재실을 보수 중에 있는 것을 보면 곧 공개하려는 것이 아닐까 생각도 한다. 속세와 성역의 경계 역할을 하는 금천교(禁川橋)를 지나 능에 오른다. 노루 한 마리가 능을 가로질러 내려와 사라진다.

        < 11:07, 장릉(長陵, 16대 인조와 원비 인열왕후 한씨의 합장 능 >

               < 11:12, 참도가 특별히 넓은 홍살문 앞에서 >

                 < 11:19, 상석이 두 개인 합장 능 >

  인조(仁祖, 1595~1649)14대 선조의 손자이자 정원군의 아들이다. 1623년 반정에 성공하여 광해군과 집권당인 대북파를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다. 이괄의 난(인조 2), 정묘호란(1627), 병자호란(1636)을 겪고, 삼전도에서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 3번 절하고, 9번 머리를 조아림)의 치욕을 겪은 가장 어리석은 조선왕이었던 것 같다. 인열왕후(仁烈王后, 1594~1635)는 능양군과 가례를 올리고 인조가 즉위하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영릉(英陵)과 같이 합장 능이며, 상석은 두 개다.

               < 11:20, 무인석과 문인석의 석물들이 정교하게 >

             < 11:23, 병풍석에는 섬세하게 조각한 그림이 >

                 < 11:24, 곡장에서 바라본 능침 공간 >

  입장한 팀은 우리부부 뿐으로, 제한이 없는 능침공간에 올라 여러 석물들을 자세히 살펴본다. 다른 능과는 달리 무인석과 문인석은 정교하게, 병풍석과 난간석의 문양은 특이하게 모란꽃과 연꽃들로 조각되어 있다. 곡장 뒤로 가서 능을 조망한 뒤 능침을 내려오는데,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존경받지 못하는 조선 왕이라 생각하니 측은하기도 하다. 왕릉 정문 앞에도 버스 정류장이 있지만, 하루에 3~4회 뿐으로 다시 삼거리까지 걸어 와서, 마을버스 33번을 타고 금촌역으로 돌아간다.

              < 파주삼릉 안내도(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선명함) >

             < 12:55. 통일로에 있는 파주 삼릉 입구 정류장 >

                < 13:03, 파주삼릉 안내표시(정문 이전) >

  금촌역 정류장에 내려 파주삼릉 가는 버스 번호를 물으니, 기다리는 주민들은 모두 모른다. 그런데 어르신 한분이 혹시 공릉을 가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고 한다. 이 지역에서는 공릉이라고 통하는 삼릉까지 직접 가는 마을버스 63(금촌역팔학골)이 있다. 자주 없기에 기다리다 지쳐 걷기로 하고, 입구까지 가는 64(금촌농협장곡리)을 탑승한다. 여의치 않으면 택시를 타려 했는데, 입구까지 가는 버스는 많은 편이다. 정류장에서 거리는 800m로 오전의 장릉보다는 100m 가깝다.

                     < 13:04, 파주삼릉 정문과 매표소 >

                     < 13:08, 역사문화관 입구 사진 >

                < 13:12, 역사문화관을 나와 다리를 건너 >

  장릉은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하기에 우리만 둘러보았고, 이곳 파주 삼릉은 평일에 추석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두 팀뿐으로 한적하다. 이곳에는 왕릉이 3기가 있는데 왕을 지낸 임금은 없고, 단종, 세조, 예종, 성종에 이르기까지 433년간 정치일선에서 숱한 활약과 일화를 남긴 한명회(韓明澮, 1415~1487)의 단명한 딸 둘(17, 19)이 왕후로서 두 능(공릉과 순릉)을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 영릉은 영조의 맏아들이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나 10세로 세상을 떠난 추존 왕 진종의 능이다.

                         < 13:13, 진입로에 있는 재실 >

           < 13:17, 공릉(恭陵, 8대 예종의 원비 장순왕후 한씨의 능 >

                < 13:21, 정자각과 비각사이 능침 공간 >

  재실을 지나 추천 관람코스 따라 공릉부터 답사한다. 장순왕후(章順王后, 1445~1461)는 세조 대의 공신 한명회의 딸로 1460(세조 6)세자빈으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1461년 원손 인성대군을 낳고 산후병을 앓다가 17세 나이로 승하하였으며 1472(성종 3)에 왕후로 추존되었다. 능침공간을 공개하고 있어 올랐더니, 당초 왕후능이 아닌 세자빈 묘로 조성된 관계로 초석과 난간이 생략되고, 봉분 앞에 상석(床石)8각의 장명등을 세우고 좌우 양 쪽에 문인석 2기를 세워 간략하다.

                   < 13:23, 간략한 능침 공간과 석물들 >

                  < 13:25, 숲속의 쉼터에서 휴식을 >

               < 14:07, 숲 속 산책로 따라 순릉으로 >

  봉분 주위로 석마(石馬), 석양(石羊), 석호(石虎) 각각 2필씩이 능 주변을 호위한다. 문인석은 손에 홀()을 쥔 양식으로 옷 주름 등이 조선 전기 문인석 양식을 따르고 있는데, 조각 수법이 서툴러 전체적인 선이 유연하지 못하다고 한다. 먼 곳까지 와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다보니, 노선에 익숙하지 않아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숲속의 쉼터에서 휴식을 하면서 약간의 간식으로 허기를 채우고 강행군한다. 햇빛이 비추는 아름답고 조용한 순릉의 숲속을 우리 부부만이 산책을 하고 있다.

           < 14:13, 순릉(順陵, 9대 성종의 원비 공혜왕후 한씨의 능 >

                  < 14:16, 순릉 홍살문 앞에서 >

           < 14:18, 순릉의 제향 공간(수라간, 정자각, 수복방, 비각) >

  공혜왕후(恭惠王后, 1456~1474)는 한명회의 딸로 공릉의 장순왕후와 자매지간이다. 1467(세조 13) 12세의 나이로 자율산군(성종)과 가례를 올리고, 1469(예종 1) 성종이 즉위하자 왕비로 책봉된다. 1474(성종 5) 자녀 없이 19세의 나이로 승하한다. 권세와 부를 오래 누렸던 한명회도 두 딸을 예종(셋째)과 성종(넷째)의 원비로 2(숙부와 조카사이)에 걸쳐 보내지만, 모두 단명하니 인명재천(人命在天)인가 보다. 제향 공간(수라간, 정자각, 수복방, 비각)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다.

                    < 14:22, 순릉의 능침은 멀리서 줌으로 >

              < 14:28, 영릉(永陵, 추존 진종과 효순왕후 조씨의 능 >

              < 14:29, 정자각과 비각(비각은 2, 비는 3>

  능침공간을 통제하여 멀리서 줌으로 당긴다. 조선전기의 능 형태로 소담한 돌기둥 난간(난간석주·欄干石柱)을 둘렀으며, 봉분 앞에 상석과 8각의 장명등을 배치하고 양쪽으로 문인석과 망주석을 두었다. 진종(眞宗, 1719~1728)은 제21대 영조의 맏아들로 1725(영조 1)7세 나이로 왕세자에 책봉되고, 1727(영조 3) 가례를 올렸으나 10세에 세상을 떴다. 영조는 진종(효장세자)의 이복동생 사도세자를 왕세자로 삼았으나, 사도세자는 당쟁에 휩싸여 영조의 명으로 뒤주에 갇혀 죽는다.

             < 14:30, 추존 진종과 효순왕후의 쌍능을 멀리서 줌으로 >

          < 15:47, 헤이리 예술마을 안내도(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선명함) >

           < 15:49, 헤이리 4번 게이트에 한국근현대사 박물관 건물이 >

  1762년 영조는 둘째아들 사도세자를 폐위하고, 왕세손(正祖)을 효장의 아들로 입적시켰다. 효장은 정조 즉위 후 영조의 유언에 따라 진종으로 추존되었다. 효순왕후(孝純王后, 1715~1751)1727(영조 3)세자빈으로 책봉되고, 진종이 죽고 난 뒤 37세까지 살다가 소생 없이 승하한다. 시간이 남아 헤이리 예술마을 관광에 나선다. 통일로 정류장까지 걸어 나왔으나, 직접 가는 버스가 없어 금촌역까지 와서 900번 버스로 환승한다. 헤이리 4번 게이트에서 내려, 마을로 들어선다.

            < 15:51, 박물관 입구에 있는 추억을 불러오는 소품들 >

                     < 15:55, 마을 거리의 이정표 >

                   < 16:00, 멋진 소나무와 하얀 집 >

  아침에 들리었던 장릉 삼거리에서 좀 더 가면 영어마을부터 시작하여 대단위 부지에 자리하고 있다. 입장권을 구입하고 들어가는 마을인줄 알았는데, 통일동산 지구에 있는 예술인들의 거주 공간 및 문화 공간이다. 15만평의 공간에 작가, 미술인, 영화인, 건축가, 음악가 등 370여 명의 예술인들이 회원으로 참여해, 살림집을 비롯해서 작업실, 미술관, 박물관, 갤러리 등 문화 예술 공간을 지었다고 한다. 한국근현대사 박물관 입구에는 옛 추억을 불러오는 소품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다.

                  < 16:02, 개천을 건너는 다리도 예술적으로 >

                      < 16:09, 마을 상가 빌딩 앞에서 >

                 < 16:15, 커피 박물관 외 여러 박물관들이 >

  입장료를 지불하고 박물관 안으로 들어 가보고도 싶었지만 시간이 없다. 실제 왕릉 보는 시간보다 길거리에서 보낸 시간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헤이리(Heyri)란 이름의 유래는 파주 지역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전래 농요인헤이리 소리에서 따왔다고 한다. 마을을 흐르는 개천을 건너는 다리마저 예술적으로 만들어 놓고, 아직까지도 건물을 지을 택지도 많고, 현재 신축중인 건물도 간혹 보인다. 여러 소형 박물관들이 많은데, 입장료를 지불하고 들어 갈 가치가 있는지 궁금하게 한다.

                            < 16:16, 영화 박물관 >

                    < 17:57, 봉피양 음식점에서 뒤풀이 >

                    < 18:10, 주문한 식단의 돼지 갈비 >

  생활을 하고 있는 집보다는 영업을 하는 주로 레스토랑을 겸한 분위기 있는 카페들이 많이 있다. 평일이고 추석을 앞두어서 인지 마을거리는 한산하고, 젊은 커플들만 가끔 보인다. 짧은 시간 안에 헤이리 마을이 어떠한 곳이라는 것만 알고는 오늘 일정을 마무리 한다. 귀가 길은 1번 게이트로 나와, 길 건너 정류장에서 2200(맥금동합정동) 광역버스를 이용한다. 한강변을 달리는 거의 직통 개념으로 40여 분만에 합정역에 도착한다. 뒤풀이는 집근처에 있는 봉피양 음식점에서 딸네 가족과 함께 한다.

 

 

Posted by 프코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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