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탐방 일시: 2015920()916()

2) 탐방 코스: 구파발역 1번출구360번 버스탑승신흥유원지 하차온릉(단경왕후)→버스

                   구파발역 3번출구삼송역 5번출구41번마을 버스탑승종점 하차→서삼릉

                   (단경왕후의 희릉, 철종과 철인왕후의 예릉)종점회귀/916효릉

                   (인종과 인성왕후)종점회귀/→마을 버스삼송역 4번출구

3) 탐방 시간: 958~1345, 9:06~10:42(5시간24),        5.0km추정

4) 탐방 인원: 아내와 함께

5)  날   씨   : 맑 음

6) 탐방 후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조선 왕릉 40기 중에서 3(온릉, 효릉, 장릉)는 비공개 왕릉이다. 모두 문화재청 조선왕릉 서부지구관리소 산하에 있어, 사전 허가를 받고 방문해야 한다. 이번에 비공개 온릉은 서오릉에 사전허가를 받았지만, 효릉은 서삼릉에서 최근 허가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내일이 제향일이라 하여 다음날 미리 다녀왔다. 서삼릉 중에서 공개되는 희릉과 예릉, 효창원과 의령원만 간다. 그래도 소경원, 회묘, 후궁묘, 왕자공주묘 46, 태실 54기를 보지 못함이 안타깝다.

                 < 조선 왕릉 위치도(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선명함) >

                     < 온릉 안내도(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선명함) >

                            < 9:20, 3호선 구파발역 1번 출구 >

  이중에서도 인조의 장남인 소현세자의 소경원과 왕릉이 부럽지 않다는 연산군 어머니의 회묘를 보고 싶었다. 소현세자(1612~1645)는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동생 봉림대군(효종)과 함께 끌려갔다가 9년 만에 돌아와서는 의문의 급사를 당한다. 부인마저 죽임을 당하고, 세 아들도 제주도로 유배되어 일찍 죽는 비운의 세자다. 허가 받은 일정시간에 맞추려고, 서둘러 2시간 전에 집을 나선다. 허가 받은 온릉부터 가기 위해 구파발역 1번 출구에서 360(불광동의정부)버스(9:33)를 탄다.

                           < 9:57, 신흥유원지 입구 정류장 하차 >

                       < 9:58, 횡단보도 건너 온릉 정문(39번국도 옆) >

                  < 10:05, 출입허가서 제출(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선명함) >

  불광동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20분 간격으로 출발하는 360번 버스를 13분 기다려 탑승한다. 내려야 할 신흥유원지까지는 21개 정류장이나 된다. 사전허가 예약시간이 10시인데, 27분 만에 도착할지가 불안하다. 정류장사이의 거리가 짧아, 2분전까지 도착할 수 있어 다행이다. 오히려 문을 열어줄 사람이 오지를 않는다. 5분정도 지나, 전화를 하려고 하니 전동카를 타고 관리인이 나온다. CCTV 화면을 보고, 나왔다고 한다. 허가서를 제출하자, 반갑게 맞아주어 진입로 숲길 따라 들어간다.

                                < 10:09, 숲속 왕릉 진입로 따라 >

                     < 10:10, 입구에 있는 재실(옆에는 관리인의 숙소) >

                 < 10:14, 온릉(溫陵, 11대 중종의 원비 단경왕후 신씨의 능 >

  입구에는 작은 규모의 재실이 있고, 옆은 문을 열어 준 관리인이 살고 있다. 문을 열어주러 외부에서 오는 줄 알고, 늦을까봐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소 늦어도 무난할 번했다. 방문일지에 서명을 하고는 답사를 시작한다. 단경왕후(端敬王后, 1487~1557)1499(연산군 5) 진성대군(중종)과 결혼해 부부인이 되었다. 그러나 연산군의 처남이자 중종반정 당시 좌의정이었던 아버지가 반정으로 살해되고, 죄인의 딸은 왕비로 부적하다고, 왕비 책봉 7일 만에 폐서인되어 궁 밖으로 쫓겨난다.

                          < 10:22, 석상이 절반 정도인 능침 공간 >

                               < 10:23, 단경왕후 능침 앞에서 >

                             < 10:25, 무인석은 없고 문인석만 >

  소생 없이 71세로 세상을 떠났으며, 1739(영조 15)에 복위되어 묘호를 단경, 능호를 온릉이라 했다. 계비인 장경왕후가 인종을 낳고 산후병으로 6일 만에 죽자 신하 중 일부가 단경왕후의 복위 건의에 중종은 그 사람들을 유배 보냈다. 전해오는 인왕산 치마바위 전설은 중종이 단경왕후의 집 쪽을 바라보며 그리워하니, 왕후는 분홍치마를 바위에 걸쳐놓아 화답했다는 일화도 있다. 병풍석과 난간석이 생략되고 동물 석상을 절반으로 줄여 간략한 것은 추봉된 왕비의 능이기 때문이다.

              < 10:26, ()에서 바라보는 배경이 능과 통합적인 경관을 >

                        < 10:35, 수복방의 유구가 잘 남아있는 터 >

                    < 10:42, 온릉 탐방을 마치고 다시 문을 열어줘 >

  봉분에서 정자각과 홍살문이 일직선을 이루고 있어 능역이 한눈에 들어온다. 곡장 뒤에서 바라본 능침은 주산과 좌청룡. 우백호 그리고 내사선에 의해 지기를 포근히 감싸고 있는 형국으로 명당자리이다. 정자각은 현재 보수 중이어 볼 수 없지만, 옆의 수복방 터에는 유구가 잘 남아 있다. 크지 않은 왕릉이기에 일찍 돌아보고, 다시 통제 문을 열어주어 나온다. 온릉 탐방을 마치고 서삼릉으로 가기위해 다시 360번 버스를 탄다. 구파발역(11:13)에서 지하철을 타고, 삼송역 5번 출구로 나온다.

                     < 서삼릉 안내도(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선명함) >

                      < 11:31, 삼송역 5번 출구에서 41번 마을버스 >

                  < 12:05, 마을버스 종점이자 삼거리 갈림길(효릉과 서삼릉) >

  삼송역에서 서삼릉가는 41번 마을버스는 휴일은 매시 25, 55(평일:15, 35, 55)으로 20여분 기다려 탑승한다. 종점이기도 한 서삼릉 입구는 삼거리이다. 오던 방향에서 왼편은 효릉과 회묘, 후궁묘, 왕자공주묘, 태실(도보 20여분 소요)가는 길이고, 오른편 서삼릉(600m, 도보 15분여소요)으로 간다. 4일전(16) 효릉제향일에는 효릉을 보기 위해, 왼쪽 길로 걸어서 다녀왔다. 삼거리에는 너른마당 이라는 음식점이 있고, 한양C.C에서 티샷하는 장면과 소리를 보고 들을 수가 있다.

                  < 12:11, 서삼릉으로 가는 길에는 시원한 숲길이 >

                         < 12:17, 서삼릉 입구 매표소 및 정문 >

                   < 12:18, 굳게 닫힌 경마 아카데미(, 종마목장) 정문 >

  삼거리에서 서삼릉에 이르는 차도에는 은사시나무가 시원하게 뻗어 있어, 상쾌한 기분으로 걷는다. 서삼릉(西三陵)3왕릉, 3, 1묘로 구성되어 있지만, 농협중앙회 소유지인 효릉, 소경원, 회묘는 비공개 지역이다. 옛날 전직 대통령께서 서삼릉 주변의 땅을 개발하라는 지시로 농협과 마사회가 국가의 땅을 소유하게 되었고, 농협은 젖소 개량 사업장과 농협대학을 지었고 마사회는 종마장을 만들었다고 한다. 서삼릉 옆에는 렛츠런 팜 원당(Let's Run Farm, 경마아카데미)정문이 함께 있다.

             < 12:23, 희릉(禧陵, 11대 중종의 제1계비 장경왕후 윤씨의 능 >

                               < 12:24, 희릉 홍살문 앞에서 >

                < 12:25, 희릉 정자각과 비각 사이로 본 단릉의 능침() >

  말 산업에 대한 범국민적 이해와 제고를 위해, 시민들의 편의를 위하여 목장내 일부 시설을 매주 수요일~일요일에 개방하고 있다. 오늘은 그동안 가뭄으로 지하수가 고갈되어 화장실 사용 등을 못해 출입을 금지한다. 추천 관람코스에 따라 우측 희릉부터 간다. 장경왕후(章敬王后, 1491~1515)1506년 중종의 후궁인 숙의(淑儀)로 책봉되었으나, 1515년 세자인 인종을 낳고 승하한다. 통제로 오를 수 없었지만, 병풍석이 없고 난간석만 두른 단릉으로 조선 전기의 능제를 따랐다고 한다.

                  < 12:30~13:08, 희릉과 예릉 사이 통로 옆 쉼터에서 휴식 >

                       < 13:09, 예릉(睿陵, 25대 철종과 철인왕후 김씨의 능 >

                                    < 13:10, 예릉 홍살문 앞에서 >

  중종은 정릉(삼성동), 원비는 온릉, 1계비는 희릉, 2계비는 태릉에 각각 묻혀있다. 철종(哲宗, 1831~1863)은 장조(사도세자)의 증손자로, 1849년 헌종이 재위 15년 만에 후사가 없이 승하하자, 강화도 촌거에서 올라와 19세에 즉위하였다. 재위 14년 동안 처음 3년은 대왕대비가 수렴청정하고, 그 이후는 안동김씨의 세도로 인하여 국정을 바로 잡지 못하고 승하했다. 철인왕후(哲仁王后, 1837~1878)는 대왕대비에 의해 1851년에 왕비로 책봉된다. 1858년에 원자를 낳았으나 곧 죽었다.

                       < 13:15, 통제로 인해 멀리서 능침을 줌으로 >

                < 능침을 못 보는 아쉬움을 브로슈어(Brochure) 사진으로 >

                                < 13:19, 재실을 겸하는 관리사무실 >

  서삼릉은 비공개지역의 능과 원 그리고 묘도 많지만, 공개된 능과 원도 능침을 오를 수 없게 통제하고 있다. 능침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브로슈어(Brochure) 사진으로 대신한다. 능제는 봉분을 난간석으로 연결한 쌍릉이다. 곡장이 둘러지고 석양(石羊)과 석호(石虎)가 봉분을 호위하고 있다. 재실을 겸하고 있는 관리 사무실로 가는 중에 직원을 만나, 비공개 지역에 대한 관람 방법을 재확인 한다. 회묘, 후궁 묘, 왕자공주 묘, 태실은 허가로 가능하지만, 효릉과 소경원은 불가하다.

                          < 13:24, 효창원과 의령원의 정자각과 비 >

                          < 13:25, 효창원(아래), 의령원() 능침 >

                                  < 13:32, 서삼릉 정문을 나와 >

  인종의 효릉과 소현세자의 소경원은 농협중앙회 젖소개량사업소 관할 안에 깊숙이 들어가 있어 지금은 완전히 차단되고 있다. 서삼릉 관계자도 축협에 출입허가를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다. 아래 효창원(孝昌園)은 제22대 정조의 큰 아들인 문효세자는 5세로 세상을 떠났다. 위 의령원(懿寧園)은 추존 장조(사도세자)의 첫째 아들로 3세에 세상을 떠났다. 종마목장 까지 가는 일정을 세웠는데, 휴장이니 너무 일찍 끝난다. 마을버스 종점인 삼거리(13:45)로 와서 4일전 다녀 온 효릉을 떠 올려 본다.

                      < 9:21, 효릉으로 들어가는 입구이자 농협의 출입문 >

                      < 9:23, 농협 출입문은 젖소 개량 사업소의 넓은 부지 >

                    < 9:27, 효릉(孝陵, 12대 인종과 인성왕후 박씨의 능) >

  효릉의 제향일은 매년 9월 마지막 주 수요일이나, 올해는 추석이 겹쳐 16일로 앞당겨 10시에 지낸다고 하여 730분 일찍 집을 나선다. 오늘처럼 마을버스를 타고 삼거리에 내리니(9:06), 제향에 참석하는 인성왕후의 손자 되는 어른께서 서삼릉으로 가지 말고 왼쪽 길로 같이 가자고 한다. 농협 부지 안에 별도의 펜스가 쳐진 효릉이다. 인종(仁宗, 1515~1545)은 중종의 맏아들로 1544년 즉위하였으나, 재위 9개월 만에 승하한다. 생모가 낳고는 7일 만에 세상을 떠나자, 문정왕후한테 자란다.

                                     < 9:28, 효릉 홍살문 앞에서 >

                                 < 9:32, 제향을 준비하는 후손 >

                                   < 9:36, 정자각 옆의 비각 >

  성품이 조용하고 효심도 깊으며 형제간의 우애도 돈독했다고 한다. 소생이 없어 이복동생인 명종이 대를 이었다. 인성왕후(仁聖王后, 1514~1577)1524년 세자빈에 책봉, 인종 즉위와 함께 왕비가 되고, 1577(선조 10)에 승하한다. 도착한 시간은 930분인데, 제향은 12시부터라고 하니 사전 정보가 틀렸다. 동행해서 온 어르신은 미리 나와 준비하고 있는 효릉 봉양회 회장께 소개도 시켜준다. 비공개 능으로 능침까지 답사 가능 하지만, 제향 지내러 온 후손들 앞에서 오를 수가 없다.

                          < 9:37, 오르지는 못하고 멀리서 본 능침 공간 >

                < 능침에 오르지 못 한 아쉬움을 브로슈어(Brochure) 사진으로 >

                             < 10:26, 소문난 서삼릉 보리밥집 >

  난간석으로 두 봉분을 연결한 쌍릉이며, 곡장 안에는 석양과 석호가 봉분을 호위한다. 인종의 봉분에는 병풍석이 있으나, 인성왕후는 병풍석이 없어 간략하다. 서삼릉 안내도 상에는 소경원과 회묘 등이 가까워 능 주변을 돌아보았으나 찾을 수가 없다. 멀리 떨어져 있고, 별도의 펜스가 쳐져 관리인과 함께 입장해야 한다고 한다. 12시까지 기다릴 수 없어 제향(사가에서는 제사)은 보지 못하고 나오니 소문난 보리밥집이 있다. 음식점 출발(10:26)하여 종점(10:42)까지 빨리 걸어 16분이다.

                 < 13:45, 버스종점, 출발(14:10)삼송역 4번출구 도착(14:22) >

                    < 17:00, 황칠토종 닭백숙을 먹기 위해 다시 찾은 황칠나라 >

                               < 17:08, 황칠토종 닭백숙의 식단 >

  이제는 삼거리 버스 종점으로 다시 돌아와 이후 일정을 시작한다. 4일전 효릉을 다녀오며 보아두었던 서삼릉 보리밥집에 들려, 보리밥과 함께 코다리 구이를 먹으려 했는데 왕복 40여분을 걸어야 한다고 하니 아내가 힘겨워한다. 버스가 바로 떠나 오래 기다렸다 타고서, 삼송역 4번 출구로 와서 귀가 길에 오른다. 지난주에 인원이 적어 먹지 못한 황칠토종 닭백숙으로 뒤풀이를 한다. 황칠나무의 대표적인 효능은 면역력 강화, 항암작용,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뇌졸중 예방 등에 좋다.

  또한 변비, 우울증, 불면증, 스트레스 해소, 대장질환, 비염, 위장질환에 좋다고 하니, 만병통치약 같은 음식(황칠토종 닭백숙:80,000, 황칠토종 오리백숙:90,000)이다. 먹다보면 몸이 따뜻해지면서 땀이 나는 것이 몸에 좋은 음식을 먹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3인이 먹었는데도 다 먹지를 못해, 남은 것을 포장해서 가지고 올 정도로 양도 많다. 쉽게 갈 수 없는 비공개 지역 왕릉 2기를 포함하여 서삼릉까지 다녀왔으니, 이제 남은 왕릉은 전체 40기중에 8기를 남겨두고 있다.

 

Posted by 프코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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