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탐방 일시: 2015104()

2) 탐방 코스: 동서울버스터미널영월버스터미널서부시장창절사노루공원

                     →장릉선돌은행나무청령포김삿갓면(하동면) 지인의집

              < 연산군묘 >쌍문역 1번출구130번버스환승연산군묘원점회귀

3) 탐방 시간: 1030~1500(4시간30),           4.0km추정

4) 탐방 인원: 아내와 함께

5) 날 씨 : 맑 음

6) 탐방 후기

  조선 왕릉은 한양에서 100(40km)이내에 만들도록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정해져 대부분 서울, 경기도에 있는데 비해, 단종의 장릉은 멀리 강원도 영월에 있어 마지막 답사에 나선다. 영월에 가기 전에 서울둘레길 상에 있어 수차례 다녀온 방학동의 연산군묘 부터 다시 다녀왔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40기 조선왕릉과 묘호가 없어 제외된 2기 임금의 묘(광해군, 연산군)까지 탐방을 모두 마친다. 묘역에 파란잔디가 있을 때 탐방을 마치려고 서둘렀던 것이, 계획대로 마칠 수 있어 다행이다.

< 조선왕릉 분포도(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선명함) >

               < 영월 장릉 안내도(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선명함) >

                          < 10:30, 영월 버스 터미널 >

  가장 먼 곳에 있어 승용차로 갈까 망설이다가, 이번 답사가 여주를 제외한 지역은 대중교통을 이용하였기에 동서울 버스터미널에서 영월(15,300, 8:30)행 버스를 탄다. 제천I.C(9:58)자동차전용도로(강승월 휴게소)영월버스터미널(10:24)에 도착한다. 이웃에 살던 지인이 18년 전 이곳으로 이사 올 때만 해도 교통이 불편하고 많은 시간이 걸렸는데, 지금은 논스톱으로 2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이후에도 영월은 인근에 명산이 많아, 등산 왔다가도 많이 다녀온 곳이라 낯설지가 않다.

< 영월군 관광지도(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선명함) >

                     < 10:38, 맞은편 영월 서부시장 >

               < 10:41, 예진네 분식에서 메밀전병과 녹두전 >

  대중교통을 이용한 당일코스이기에 상경할 버스 예매(18:00)부터 하고 일정을 시작한다. 주된 일정인 장릉과 연관된 청령포, 선돌, 서부시장 정도만 관광하기로 꼽았다. 거리가 먼 한반도 지형, 별마로 천문대, 고씨동굴, 김삿갓 유적지 등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포기한다. 서부시장 안으로 들어가니 음식점들과 시장 통로에는 메밀전병과 녹두 전 등을 부치는 노점이 즐비하다. 그중에 부부가 정겹게 전을 부치는 가게에서 일반전병, 백년초가 들어간 전병과 녹두전을 가볍게 먹고 걷는다.

              < 11:12, 창절사, 창절서원(彰節祠, 彰節書院) >

                < 11:34, 장릉 표시와 관광안내소, 매표소 >

                         < 11:37, 단종 역사관 >

  전병과 전을 먹으며 부부와 이야기를 나누니, 시내는 크지 않아 장릉과 청령포는 걸어서 다닐 정도의 거리라고 한다. 서부시장을 나와(11:05) 오른편 차도 단종로 따라 걷는다. 영월의료원을 끼고 좌측으로 돌아서니,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가 세조에 의하여 피살되거나, 절개를 지키었던 충신들의 위패가 모셔진 창절사가 있다. 곧장 가면 넓은 연못이 있는 장릉 노루조각공원(11:29)이 들렸다 가라한다. 장릉까지는 두 곳을 둘러보지 않는다면 20여분 이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 11:54, 단종역사관과 박충원 낙촌비각 사이 왕릉 가는 계단 >

             < 11:56, 계단을 올라 능선 숲길로 능침까지 >

              < 12:00, 장릉(6대 단종)의 능침 공간 >

  입장료는 조선왕릉 중에서 제일 비싼 1,400(경로우대 무료)을 받고 있다. 여주의 영릉만 500원이고, 다른 능은 전부 1,000원인 줄 알았는데 아니다. 역사관에 들려 단종의 생애에 대한 공부를 하고 능으로 오른다. 영월 군수이던 박충원이 노산묘를 찾은 일에 대한 사연을 기록한 낙촌비각 사이에 오르는 계단이 있다. 능선 숲길을 지나니 바로 능침공간이 나와 이상하다 했더니, 제향공간은 저 아래에 있다. 순서가 바뀌어 능침을 먼저 보고 뒤돌아서니, 제향공간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 12:03, 능침에서 내려다 본 제향 공간 >

                < 12:10, 장릉(莊陵, 6대 단종의 능 >

                 < 12:11, 장릉 홍살문 앞에서 >

  단종(端宗, 1441~1457)은 제5대 문종의 아들로 1452년 문종이 재위 24개월 만에 세상을 뜨자, 12세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어머니 현덕왕후는 단종의 출산 후유증으로 출산 후 하루 만에 승하하였고, 단종의 숙부 수양대군(세조)이 계유정난으로 권력을 잡자, 세조에게 왕위를 내주고 상왕으로 물러났다. 사육신의 단종 복위운동은 실패되고, 1457(세조 3)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청령포로 유배된다. 강물이 범람하여 영월읍내의 관풍헌으로 거처를 옮긴 후 그해 사약을 받고 승하한다.

                          < 12:14, 영천(靈泉) >

              < 12:27, 엄흥도(嚴興道)의 정여각(旌閭閣) >

                  < 12:28, 향나무 고목이 있는 재실 >

  처음부터 왕릉으로 조성되지 아니하여 다른 조선 왕릉과 다른 점이 많다. 참도는 대부분 일자형인데「ㄱ」자로 꺾여 있고, 높은 곳에 있는 능침의 방향도 제향공간과는 맞지 않는다. 보통 때는 샘물이 조금씩 솟다가, 매년 한식 때에는 제향으로 쓰도록 많이 용출된다는 신비한 샘이다. 정여각은 엄흥도가 영월 호장으로 있을 때, 단종은 1457년 사약을 받고 강물에 버려진다.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三族)을 멸한다는 어명에도 시신을 암장하여, 그 충절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 세워졌다.

               < 12:38, 소문난 장릉 보리밥 집에서 점심을 >

               < 13:01, 보리밥(7,000) 식단과 동동주 >

                        < 14:03, 선돌(立石) >

  장릉을 나오면서 좌측으로 소문난 보리밥집이 있는데 잘 보이지 않는다. 10년 전에 왔을 때의 모습이 아닌 것 같아, 다른 집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로 인해 기다리는 시간이 긴 점심이었다. 식사하며 지인에게 다녀간다고 전화했더니, 당장 나오시겠다고 한다. 청령포만 간다면 다시 걸을 수도 있겠지만, 선돌을 들린 다음 가려니 거리가 멀어져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승용차로 남은 관광까지 시켜주겠다고 하니, 농사일 가을걷이로 바쁜 시기인데 괜히 전화한 것 같아 미안하다.

< 14:06, 선돌을 배경으로 >

                   < 14:40, 천연기념물 제76호인 은행나무 >

                          < 14:55, 왕방연 시조비 >

  장릉 정문 앞에서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선돌을 보기 위해 소나기재(320m)로 오른다. 오르면서 생각하니, 산악회에서 민둥산 왔다가 청령포를 들려 이곳까지 왔음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차도 옆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100m 정도 데크 길 따라 이동을 한다. 우뚝 솟아 있는 선돌 바위는 서강(西江)의 푸른 물과 층암절벽이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자아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수령이 1,000~1,200년 된 은행나무를 보고는 청령포로 가서, 강 건너에서 안쪽을 조망한다.

                   < 14:59, 나루터 위 공터에는 큰 건축물이 >

                     < 15:00, 나루터에서 강을 건너는 배 >

                        < 2008. 11. 9. 청령포 안내도 >

  강 건너에서 망향탑과 노산대를 바라보니, 밑은 아찔할 정도의 절벽이다. 소나무 숲 위는 오를 수도 없는 수직 암봉이니, 사실상 활동할 수 있는 면적은 넓지가 않다. 입구 가까이 있는 왕방연 시조비를 둘러본다. 금부도사 왕방연이 단종에게 사약을 진어하고,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통한 심정을 가눌 길 없어 청령포를 바라보면서 시조를 읊었던 곳이라 한다. 강을 건너는 행렬들이 너무 많아 외곽에서 본 것으로 오늘 일정을 끝내고, 안쪽은 2008. 11. 9.일 다녀온 사진으로 대신한다.

                      < 2008. 11. 9. 단종어소(端宗御所) >

                        < 2008. 11. 9. 관음송(觀音松) >

 < 조선왕실 계보도(朝鮮王室 系譜圖,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선명함)  >

  어가에는 단종이 머물던 본채와 궁녀 및 관노들이 있던 사랑채가 있다. 천연기념물 제349(수령 600)인 소나무는 단종의 유배 당시의 모습을 보았고(), 오열하는 소리를 들었다()하여 관음송(觀音松)이라 불린다. 당일로 준비 없이 왔다가, 덕가산(832m) 암벽이 병풍을 두르고 앞에는 강이 흐르는 명품마을인 지인의 집에서 1박 한다. 맑은 공기 마시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 힐링 여행으로 왕릉 답사의 대미를 장식한다. 바쁘신 중에도 저희 부부를 환대해주신 지인께 감사드립니다.

                < 연산군묘 안내도(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선명함) >

                      < 11:00, 4호선 쌍문역 1번 출구 >

                 < 11:20, 연산군묘 정문(중부지구 관리소) >

  유네스코에 등재된 조선왕릉 40기 답사를 시작한 동기는 비공개 광해군 묘이다. 조선 27대 왕 중에 묘호(廟號)를 받지 못해, 40기 왕릉에 포함되지 못한 광해군 묘로 시작하여, 또 하나의 연산군 묘로 끝맺음하고자 다시 간다. 묘가 방학동의 서울둘레길 상에 있어서 3번씩이나 다녀 와 쉽게 찾아 간다. 4호선 쌍문역 1번 출구(2번 출구는 공사중)로 나와, 130번 버스(우이동길동)로 환승하여 연산군묘 정류장에서 하차한다. 정류장 옆의 묘역은 관리 사무실이 있지만, 입장료는 무료다.

                   < 11:22, 입구 중앙에서 본 전체 묘소 >

                 < 10대 연산군(燕山君)과 군부인 신씨의 쌍묘 >

               < 11:31, 측면에서 본 문,무인석과 석등, 망주석 등 >

  입구로 오르면 묘역에는 5기의 묘가 있다. 하단은 연산군의 딸과 사위의 쌍묘, 중간은 태종의 후궁이었던 의정궁주 조씨의 단묘, 상단에 연산군과 왕비 신씨의 쌍묘가 위치한다. 가운데 있는 의정궁주의 묘소에 군부인 신씨의 요청으로 연산군묘가 이장되어 왔다. 연산군(燕山君, 1476~1506)은 성종과 폐비 윤씨 사이에서 태어나 7살의 나이에 세자로 책봉되어 19세에 제10대 임금이 되었다. 즉위 초기에는 평화로운 풍요를 이어가며, 성종 말기에 나타난 부패상을 없애는 업적을 남긴다.

                      < 11:33, 곡장 뒤에서 본 묘역 >

                  < 11:35, 묘역 우측에서 연산군묘 배경으로 >

                      < 11:49, 묘역 밖에 있는 재실 >

  생모 윤씨의 폐출경위를 알게 된 이후에는 패륜적인 행위를 일삼아, 1506년 중종반정으로 폐위되어 강화도 서북쪽에 있는 섬 교동도에서 병사한다. 군부인 신씨 사이에서 21, 후궁 소생으로 많은 자녀들을 두었으나 아들들은 태어나자마자 죽거나 모두 귀양지에서 죽었다고 한다. 유배지인 교동도에 안장되었다가 연산군 부인 폐비 윤씨가 중종에게 요청하여 이곳으로 옮겨졌다. 묘역이 넓지 않아, 돌아보는데 많은 시간은 필요치 않다. 묘역 밖에 있는 재실은 평상시라 굳게 잠겨 있다.

                       < 11:52, 원당 샘 공원의 원당정(元堂亭) >

                        < 11:55, 공원 내 원당 샘 약수터 >

                  < 11:55, 공원내 서울시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 >

  묘역 밑에는 원당샘 공원이 자리하고 있어 많은 주민들이 나와 산책을 하고 있다. 공원 내에는 멋진 원당정 정자가 있고, 약수터에는 약수를 받으러 온 이웃 주민들이 줄을 서 대기하고 있다. 서울시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로 모습이 고상하고 아름다워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신성시 하는 보호수가 있다. 이곳에 불이 날 때마다 나라에 큰 변이 생겼다는 일화도 전해지고 있다. 비공개 능 출입을 허가 받아 우연히 찾게 된 조선 왕릉 탐방을 10여 번에 모두 마치게 되어 기쁘다. 찾아가는 재미도 있었지만, 잊혀져가는 우리 선조들의 역사를 다시 기억하는 계기가 되었다.

 

Posted by 프코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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