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탐방 일시: 201596()

2) 탐방 코스: 여주시내영릉(세종과 소헌왕후)영릉(효종과 인선왕후)신륵사

                   →천서리 막국수촌광릉(세조와 정희왕후)

3) 탐방 시간: 1025~1655(6시간30),           4.0km추정

4) 탐방 인원: 아내와 함께

5)  날    씨  : 맑 음

6) 탐방 후기

  조선 왕릉 탐방은 대중교통만을 이용하려 했으나, 외곽에 있어 교통이 불편한 여주의 영녕릉(英寧陵)과 남양주의 광릉(光陵)을 승용차로 간다. 성큼 가을이 다가와 등산하기 좋은 계절이 되었는데, 아내와 함께하는 왕릉 탐방은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된다. 푸른 잔디가 있을 때에 왕릉 탐방을 마치려고 서두르고 있다. 겨울에 왕릉을 돌아보는 것은 흰 눈이 소복이 쌓이지 않고는 쓸쓸할 것 같다. 중부와 영동고속도를 타고 여주I.C로 가려 했는데, 내비는 서하남I.C에서 빠져 양평으로 가라한다.

                < 여주 시내 관광지도(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선명함) >

                 < 조선 왕릉 위치도(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선명함) >

                    < 영녕릉 안내도(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선명함) >

  집에서 영녕릉 까지의 거리는 69km로 생각보다 그렇게 멀지는 않다. 양수리 세미원 위를 지나, 양평I.C에서 중부 내륙 고속도로를 타도록 유도 한다. 고속도로는 개통한지 얼마 안 되는지 차들이 없다. 북여주I.C를 지나 서여주I.C로 나오니, 가까운 거리에 왕릉이 있다. 일요일이지만 별 정체 없이 1시간 정도 걸려 빠르게 온 편이다. 우연히도 두 능의 한글 이름이 같은 영릉(英陵寧陵)으로만 알려져 있어, 일반인들은 세종대왕 능만 있는 줄 알고 효종의 능이 있는 줄은 잘 모른다.

< 10:33, 주차장 앞의 안내표시 >

                              < 10:33, 종합 안내판과 매표소 >

                      < 10:38, 업적을 기리는 세종전과 뜰엔 발명기구들 >

  넓은 주차장과 왕릉은 조선 최고의 왕답게 넓은 부지위에 잘 조성되어 있다. 넓은 주차장은 무료이고, 입장료도 다른 능과는 달리 성인 500원을 받고 있다. 입장하면 왼편에는 세종의 위대한 업적을 길이 숭모하고 그 위업을 오늘에 이어받아 민족 문화 창조의 기틀을 삼고자 세종전(1977)을 지었다.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군(聖君)으로 한글(훈민정음: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록)을 창제하시었다. 기념관 앞뜰에는 측우기, 혼천의, 해시계 등 발명하고 제작한 과학기구들이 있다.

                < 10:39, 천체의 운행과 위치를 관측하던 혼천의(渾天儀) >

                            < 10:40, 우측에 있는 세종대왕상 >

                   < 10:41, 능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齋室) -세종대왕 유적관리소 >

  영릉은 원래 서울 헌릉 서쪽에 있었던 것을 예종1(1469)에 여주로 옮겼다. 세종이후 세조의 왕위 찬탈과 함께 골육상쟁이 일어나며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자, 세종의 영릉자리가 좋지 않아서 후손들이 화를 당한다고 생각했다. 이후에도 세조의 맏아들 의경세자(성종의 아버지)가 죽고, 둘째 아들 예종도 병약해 건강을 장담하지 못하자, 세조 때부터 옮기려하던 능을 실행한 사유라고 한다. 우측에 있는 세종대왕상을 보고,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齋室)를 지나 영릉(英陵)으로 들어선다.

                                < 10:44, 훈민문(訓民門)을 통과하여 >

                     < 10:48, 참도 중간에 있는 금천교(禁川橋)와 홍살문 >

                                    < 10:49, 홍살문 앞에서 >

  훈민문(訓民門)을 통과해야 영릉의 제향공간과 능침공간이 보인다 능원이 신성한 구역임을 표시하는 커다란 홍살문은 둥근 기둥 두 개를 세우고 위에 지붕 없이 화살 모양의 나무를 나란히 세운 형태로, 중앙에는 삼 태극무늬가 있다. 홍살문 앞에서 정면의 정자각까지는 얇은 돌을 깔아 만든 긴 돌 길 참도가 이어진다.

                  < 10:51, 영릉(英陵, 4대 세종과 소헌왕후 심씨의 합장릉) >

 

      < 10:56, 능침공간 중계와 하계 사이를 개방해 통로로(합장릉이지만 상석은 두개) >

                          < 10:58, 우측 측면에서 본 능침과 석물 >

  혼령이 이용하는 신도와 참배자(왕 또는 제관)가 이용하는 어도가 있다. 좌측의 신도가 능의 주인인 신이 다니는 길로 우측의 어도보다 약 10정도가 높고 넓다.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의 직선거리는 대략 90m이나 능마다 차이가 있다. 주변이 모두 소나무 숲으로 이루어져 왕릉이 더 위엄이 있는 듯하다. 좌우에 계단을 두어 능침까지 오를 수 있고, 중계와 하계사이에 통로를 두어 제대로 볼 수 있어 좋다. 능의 모습을 전혀 볼 수 없는 왕릉들은 좀 더 공개 했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 본다.

                           < 10:57, 능침 통로에서 내려다 본 정자각 >

                          < 11:01, 능선으로 넘어가는 출입통제 문 >

                              < 11:04, 능선을 넘는 산책로 >

  세종(世宗, 1397~1450)은 제3대 태종의 셋째 아들로 14186월 양녕대군이 세자에서 물러나자 뒤를 이어 세자로 책봉된 뒤 같은 해 8월 경복궁 근정전에서 왕위에 올랐다. 소헌왕후(昭憲王后, 1618~1674)1408(태종 8)에 충녕대군(세종)과 가례를 올렸다. 세종과 사이에서 8남2녀를 두어 조선 왕비 가운데 가장 많은 자녀를 둔 왕비가 되었다. 효종대왕으로 가는 산책로로 진입하니, 출입통제 문이 있다. 연결 산책로는 매년 개방 시기(5.16~10.31)를 정해기간 내 출입이 가능하다.

< 11:14, 흐드러지게 핀 참취 꽃 >

                          < 11:15, 영릉(寧陵, 17대 효종과 인선왕후 장씨의 능) >

                      < 11:18, 왼쪽에서 능사이로 오르는 동선인 동원 상하릉의 능 >

   8~10월에 피는 참취 흰 꽃이 홍살문 앞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효종(孝宗, 1619~1659)은 제16대 인조의 둘째 아들로 병자호란이 끝난 뒤, 1637(인조 15)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에 가 8년간 머물렀다. 귀국 후 1645년 소현세자가 갑자기 세상을 뜨자, 세자에 책봉되어 1649년 왕위에 오른다. 인선왕후(仁宣王后, 1618~1674)는 병자호란 후 효종과 함께 청나라에 있을 때 현종을 낳는다. 속세와 성역의 경계 역할을 하는 금천교는 홍살문에 이르기 전에 금천을 건널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영릉만은 특별하게 홍살문과 함께 참도 중간에 조성되어 있다.

                           < 11:20, 올라가며 우측 아래에 있는 인선왕후의 능 >

                           < 11:22, 위에 있는 효종대왕의 능, 포토 존에서 >

                              < 11:34, 보물 제1532호인 영릉(寧陵) 재실 >

  하나의 산줄기에 상하로 봉분을 배치한 동원상하릉의 양식으로 조성되어 있어 특이하다 위쪽은 효종대왕 능이고, 아래는 인선왕후 능이다. 능침으로 오르는 길이 없는 듯하나, 자세히 보면 왼쪽 아래서부터 잔디 위로 동선을 표시해 놓았다. 상하의 능 중간으로 올라, 효종의 능 앞에는 포토 존까지 표시해 두었다. 능침 공간 언덕을 자연스럽게 잔디를 밟으며 오를 수 있도록 하여, 참배객을 최고로 배려한 능이다. 대부분의 왕릉의 재실이 멸실되거나 원형이 훼손되어 있는데, 이 곳은 그 옛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으며 공간구성과 배치가 뛰어나 보물 제1532호로 지정되었다.

                               < 11:38, 천연기념물 제459호인 회양목 >

                             < 11:40, 영릉(寧陵)의 별도 입장 매표소 >

                         < 11:42, 영릉(英陵) 주차장으로 회귀하는 길 >

  나무의 황제라고 하는 거대한 느티나무 옆에, 300여년 동안 자라고 있는 천연기념물 회양목이 신기하다. 원래 작고 낮게 자라는 나무인데, 이렇게 크게 자란 나무는 쉽게 찾아 볼 수 없어 생물학적 가치가 높다고 한다. 영릉(寧陵)은 주차장과 매표소, 정문이 별도로 있다. 입장하려는 관람객은 없고, 약수를 받으러 온 주민들로 혼잡하다. 지금은 양쪽이 개방되어 어느 쪽으로 입장해도 괜찮지만, 그 외는 입장권을 다시 보여주어야 한다. 영릉(英陵) 주차장으로 회귀하여, 신륵사로 향한다.

                   < 12:18, 신륵사 매표소(성인:2,200, 경로우대:무료) >

                              < 12:19, 봉미산 신륵사 일주문 >

                                < 12:23, 사찰 경내의 세심정 >

  여주까지 왔는데 지역을 대표하는 신륵사를 보지 않을 수 없어, 영녕릉을 떠나(11:55) 가까운 신륵사에 도착(12:15)한다. 신륵사는 오래전에 한번 다녀간 적은 있지만, 강가 바위 위에 지어진 강월헌(江月軒) 정자만 어렴풋하게 생각날 뿐이다. 신륵사는 남한강 상류인 여강(驪江)이 흐르는 강가의 봉미산(鳳尾山) 남쪽 기슭에 지어진 사찰이다.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물게 강가에 위치한 사찰로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온다. 경내에는 국보급 문화재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

                       < 12:26, 극락보전(앞은 국보 제225호 다층석탑) >

                            < 12:30, 국보 제226호 다층전탑(多層塼塔) >

                     < 12:33, 바위 위에 세운 삼층석탑과 강월헌(江月軒) >

  세심정을 지나 극락보전에 올랐더니, 보물 제225호 다층석탑(多層石塔)이 앞에 있다. 석탑이 대부분 화강암인데 비해 흰색의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것이 특이하다. 이외에도 탑 전체를 벽돌로 쌓아올린 다층전탑(多層塼塔)을 비롯하여 보물 5점과 유형문화재 1점이 더 있다고 한다. 앞으로 흐르는 여강(驪江)에는 전에 보지 못한 황포돛배와 보트가 질주하고, 건너편 강가에는 텐트촌이 형성되는 등 위락시설을 갖추고 있다. 너럭바위 위에 위태롭게 세운 정자 강월헌을 보고 신륵사를 떠난다.

                                   < 13:24, 천서리 막국수 집 >

                           < 13:26, 넓은 실내에는 손님들이 만원 >

                    < 13:30, 주문한 동치미 막국수와 비빔 막국수 >

  여주의 맛 집을 찾아 인터넷 검색한 결과, 전직 대통령이 식사한 표시석이 있는 이포대교 부근의 천서리 막국수집(여주시 대서면 천서리, 031-883-9799)에서 식사하기로 한다. 이 마을은 막국수 촌으로 형성되어 홍원막국수 외 4~5개 음식점이 더 있다고 한다. 실내는 자전거 동호인들을 포함하여 많은 손님들로 만원이다. 메뉴에 편육 14,000(200g)이 있지만 운전 때문에 아쉽게 포기하고, 막국수(7,000)에 사리(3,000) 하나만 추가 주문한다. 많은 손님들 때문일까! 맛이 있는 듯하다.

                     < 광릉 안내도(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선명함) >

                     < 15:45, 광릉수목원 가는 차도 옆 안내표시 >

                   < 15:50, 주차장을 지나, 광릉 입구(역사 문화관) >

  일요일 오후 교통 체증으로 인해, 내비게이션은 실시간 교통정보를 파악해 먼 거리로 돌린다. 양평을 거쳐 중미산의 서너치고개로 오르게 하더니, 왼편 도로인 중미산 휴양림을 거쳐 서종으로 빠지게 한다. 서종I.C에서 경춘고속도로를 타게 하고는, 마석I,C로 빠져 자동차전용도로로 퇴계원까지 가게 한다. 진접읍을 거쳐 광릉에 도착하니, 여주 천서리에서 2시간이나 소요된 장거리 운행이 되었다. 7년 전에 아내와 손자와 함께 수목원에 왔다가 들렸을 때는 주차장과 매표소가 없었다.

                         < 15:53, 매표소(입장료:1,000, 주차료:2,000) >

                                    < 15:54, 광릉의 재실 - 광릉 관리소>

                              < 15:58, 광릉으로 가는 숲속 길 >

  세조(世祖, 1417~1468)는 제4대 세종의 둘째 아들로 1453(단종 1) 계유정난으로 권력을 잡고, 1455년 조카 단종이 상왕으로 물러나자 왕위에 올랐다. 국방력 강화, 직전법 실시, 경국대전 편찬의 시작 등 많은 업적을 쌓았다. 정희왕후(貞熹王后, 1418~1483)1428년 세조와 가래를 올리고, 1455년 세조가 즉위하자 왕비가 되었다. 첫째, 둘째 아들이 세상을 일찍 떠나자, 첫째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 잘산군[乽山君 또는 자을산군(者乙山君)]을 왕위에 올리고 7년 동안 수렴 청정한다.

                    < 16:00, 광릉(光陵, 7대 세조와 정희왕후 윤씨의 능 >

                           < 16:01, 광릉 홍살문 앞에서 >

                   < 16:05, 정자각 좌측은 세조, 우측은 정희왕후의 능 >

  능침에서 바라보는 경관이 아름답다고 하는데 오르는 길이 보수중이고, 능침공간은 높은 언덕에 있어 사진을 찍을 수 없어 아쉬웠다. 매표소 전에 역사문화관이 있는 것이 다른 곳과 다르다. 광릉수목원에서 주관하는 숲 문화축제가 메르스로 연기되었다가 어제와 오늘 열리고 있어, 주변 교통과 주차장이 혼잡하다. 사전 신청자에 한해서 광릉 숲 안 숲길 6km를 걷는 행사라고 한다. 광릉을 출발(16:55)하여 집에(17:00)까지 1시간도 넘었으니, 길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았던 탐방 길로 이제는 16개 왕릉만 남기고 있다. 짧은 여주 여행도 함께한 즐거운 하루였다.

 

Posted by 프코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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