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도보관광코스는 크게 7개 지역으로 나누고, 지역 밑에는 24개의 코스를 두고 있다. 오전에 성균관 코스를 마치고, 오후에는 마지막 상설코스 지역인 21번째 남산골 한옥마을로 간다. 뜨거운 날씨로 오전 구경만 하려 했으나, 너무 일찍 끝나 2부로 오후 일정을 강행한다. 남산골 한옥마을 가는 길에 옆에 있는 한국의 집 먼저 들려보기로 한다. 매스컴이나 주위에서 많이 들어 온 두 명소를 이제서 가는 것이 겸연쩍기도 하다. 4호선 혜화역을 출발해, 가까운 충무로역 3번 출입구로 나온다.
< 서울도보관광 전체코스 지도(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선명함) >
< 한국의 집 안내도 >
< 11:40, 4호선 충무로역 3번 출입구 >
한국의집은 내.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전통문화를 홍보하기 위해 지어진 복합 문화공간으로, 전통음식, 전통공연, 전통혼례 및 전통문화상품을 직접 체험 할 수 있는 전통한옥이다. 건물은 경복궁의 자경전을 본떠서 중요무형문화재 대목장 신응수가 지었다. 본관인 해린관(가락당과 소화당으로 이루어짐), 민속극장(전통음악과 무용 매일 공연), 그리고 3채의 별관건물(문향루, 녹음정, 청우정)로 되어 있다. 인근의 남산골 한옥마을과 같이 우리 건축의 아름다움을 더 한층 느낄 수가 있다.
< 11:41, 한국의 집 입구(우측 건물은 취선관) >
< 11:42, 박팽년의 집터 였음을 알리는 표시석 >
< 11:43, 본관 왼쪽, 한국의 집 표시석 >
전통 한옥과는 달리 정문 우측의 현대식 건물 취선관은 각종 연회, 뷔페, 소모임, 전시회 등 다용도로 활용이 가능한 다목적 공간이라고 한다. 정문 좌측에는 조선시대 세종대왕 때 집현전 학자로서 사육신의 하나였던 박팽년의 집터였음을 알리는 표시석이 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는 내외 귀빈들을 위한 영빈관으로 사용했던 옛날의 기억이 어렴풋이 나기도 한다. 현재는 한옥을 신축하고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보존을 목적으로 한국문화재단에서 한국의 집을 운영하고 있다.
< 11:43, 한국의 집 본관 전면 >
< 11:44, 한국의 집 앞에서 >
< 11:46, 소화당(韶華堂)과 청우정(聽雨亭) 사이 문으로 >
연중무휴인 우리전통의 한국의 집은 중구 필동 2가 80-2번지에 대지 2,160평, 연건평 880평으로 1981년에 문을 열었다. 조선시대 정통 상류 민가 양식으로 솟을대문, 사랑채, 안채, 행랑채, 별당, 정자, 후원(오솔길, 뒷동산) 등을 갖춘 전통한옥의 건물이다.「한국의집」이란 현판이 붙어있는 정면 3칸의 본관 앞에서 인증 샷을 찍는다. 해린관(海隣館:세계 사람이 친교하는 집이란 뜻) 문을 들어서면, 사랑채격인 소화당(韶華堂/40평: 봄의 화창한 경치가 가득한 집)이 옆에 있다.
< 11:47, 청우정(聽雨亭) >
< 11:48, 문향루(聞香樓) >
< 11:48, 장 독 대 >
소화당 과 청우정 사이로 난 좁은 문으로 들어가니, 한국의 집 후원으로 작은 동산에 느티나무, 단풍나무, 소나무, 주목, 모과나무, 산죽, 철쭉 등이 아름답게 가꾸어져 운치 있는 원림(園林)을 이루고 있다. 숲속 좁은 통로 따라 이동하다보니, 후원 속에 별당격인 문향루(8평), 녹음정(綠吟亭/7평), 청우정(11평)이 자리하고 있다. 문향루라는 이름은 향기를 듣는 누각이란 뜻이고, 청우정은 비가 오면 모든 소음이 차단된 공간에 오직 빗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정자라는 뜻이라고 한다.
< 11:49, 원림에서 내려다 본 중정 >
< 11:49, 통로 옆에 서 있는 장승 >
< 11:50, 환벽루(環碧樓) >
녹음정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소박한 집으로 바깥에 툇마루가 달려있다. 이름은 녹음방초를 시로 읊는 정자란 뜻이라 한다. 크고 작은 독, 항아리, 단지들이 정연하게 설치된 장독대도 있다. 내려다 본 중정(마당)에서 전통혼례, 실외공연 등 이 이뤄진다. 중정으로 내려오는 돌계단 옆에는 우리전통의 장승이 세워져 있다. 후원의 별당에는 단체 손님이 없어 비어 있는데, 소화당에 붙어 있는 반루 형식의 환벽루(20평:푸르름 속에 선 누각) 안에는 많은 손님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 11:50, 중정에서 본 본관인 해린관(海隣館) >
< 11:51, 가락당(嘉樂堂) >
< 11:56, 한국의 집 앞 한옥마을과 갈림길 이정표 >
환벽루와 소화당 건물(60평)의 기능은 한식뷔페를 먹는 식당이라고 한다. 안채격인 가락당(嘉樂堂)은 아름다운 음악이 가득한 집이란 뜻으로 마루 3칸과 5칸의 방에는 봉래실(26평), 방장실(14평), 영주실(10평)이 있다. 이방에서 음식을 먹으면 불로장생(不老長生)한다는 의미로 신선(神仙)이 산다는 봉래산, 방장산, 영주산의 이름을 따서 방 이름에 붙여졌다고 한다. 원림 뒤쪽 공간에 남산골 한옥마을과 연결되는 협문이 있다는데, 찾을 수가 없어 정문으로 나와 왼편으로 올라간다.
< 21번째 남산골 한옥마을 안내도(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선명함) >
< 11:58, 남산골 한옥마을 정문 >
< 11:58, 한옥마을 정문 앞에서 >
남산은 자연의 경치가 아름다워 우리의 조상들이 골짜기마다 정자를 짓고 자연의 순리에 시.화로 화답하는 풍류 생활을 하던 곳으로서 각종 놀이와 여가생활을 위하여 수려한 경관을 찾는 선남선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1989년 9월 수도방위사령부로부터 토지를 매입하여 남산 제모습찾기 사업을 펼치었다. 남산골 한옥마을 조성 공사(1995.11.28.~1998.01.24)를 끝내고, 1998년 4월18일 개관을 하였다. 입장료는 무료이며, 휴관일은 매주 화요일(남산국악당: 월요일)이다.
< 11:59, 남산골 정원 종합 안내도 >
< 12:00, 청학지 연못에는 비단 잉어들이 떼를 지어 >
< 12:01, 천우각과 무대 >
정문을 지나서 있는 남산골 정원 종합안내도를 보고, 걸어 갈 동선을 그려 본다. 남산 북쪽 기슭 한옥마을이 들어선 필동(筆洞) 지역은 조선시대에는 흐르는 계곡과 천우각이 있어서 여름철 피서를 겸한 놀이터로 유명했다고 한다. 또한 청학이 노닐었다고 하여 청학동으로 불리었다. 청학동은 신선이 사는 곳으로 불릴 만큼 경관이 아름다워, 한양에서 가장 경치 좋은 삼청동(三淸洞), 인왕동(仁王洞), 쌍계동(雙溪洞), 백운동(白雲洞)과 더불어 한양 5동(漢陽五洞)으로 손꼽히었다.
< 12:01, 남산골 한옥마을 안내도(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선명함) >
< 12:02, 삼각동 도원수 이승업 가옥 입구 >
< 12:03, 이승업 가옥 안채의 모습 >
옛 정취를 되살려 시민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서울의 사대가부터 일반 평민의 집에 이르는 한옥 다섯 채를 이전, 복원하였다. 집의 규모와 당시 살았던 이들의 신분에 걸 맞는 가구까지 배치하였다. 삼각동 도편수 이승업(李承業) 가옥은 조선말기 흥선대원군에 의해 경복궁이 중건될 때 도편수(목수의 우두머리)였던 이승업이 1860년대 지은 집으로 중구 삼각동에 있던 것을 이전, 복원하였다. 대문간채와 행랑채가 안채와 사랑채를 둘러싸고 있었다는데, 지금은 안채와 사랑채만 남아있다.
< 12:05, 옥인동 윤씨 가옥 입구 >
< 12:06, 윤씨 가옥 안채 >
< 12:08~ 12:27, 청학지 벤치에 앉아 휴식 >
윤씨 가옥은 대략 1910년대에 지었다고 알려진 옥인동 가옥을 그대로 본떠서 새로 지었다. 당시 옥인동 47번지 일대 너른 땅은 순종의 황후인 순정효황후(純貞孝皇后, 1894~1966)의 큰아버지 윤덕영(1873~1940) 소유였다. 이 집 근방에 20여 채에 달하는 집을 짓고 일가붙이와 모여 살았는데, 그 가운데 서양식으로 지은 사위집(옥인동 박노수 가옥)과 윤덕영의 측실이 거처했던 옥인동 47-133번지 가옥만 남았다. 남산 N타워가 보이는 청학지 벤치에 앉아 준비한 간식을 먹으며 쉬어간다.
< 12:28, 제기동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 입구 >
< 12:29,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 안채 >
< 12:32, 관훈동 민씨(閔氏) 가옥 입구 >
조선 제27대 순종의 장인 해풍부원군 윤택영이 그의 딸이 동궁(東宮)의 계비로 책봉(1906)되어 창덕궁에 들어갈 때 지은 집으로 전해진다. 제기동 224번지에 있던 것을 이전, 복원하였다고 한다. 이 집의 평면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元(원)」자 모양인데 제일 윗 터에 사당을 배치하고 그 아래 터에는 몸채를 두었다. 관훈동 민씨 가옥은 민영휘(閔泳徽,1852~1935)의 저택 가운데 일부인데, 그는 관훈동 30-1번지 일대의 너른 땅에 집을 여러채 짓고 일가붙이와 함께 살았다고 한다.
< 12:33, 관훈동 민씨(閔氏) 가옥 안채 >
< 12:38, 삼청동 오위장(五衛將) 김춘영(金春營) 가옥 입구 >
< 12:40, 김춘영(金春營) 가옥 안채 >
원래 집터에는 안채와 사랑채 외에도 별당채와 대문간채, 행랑채 같은 집채가 있었다고 전하나 나중에 소유자가 바뀌면서 안채와 여기에 연결된 중문간채만 남기고 모두 헐리었다. 조선말기 오위장을 지낸 김춘영이 1890년대 지은 집이다. 판대공(板臺工)을 사용하고 홑처마로 꾸미는 등 전체적으로 평민주택의 양식을 보이고 있지만, 안방의 뒤쪽 벽, 즉 길가에 면한 부분에 사괴석(四塊石)과 전돌(塼石)을 사용하여 화방벽(火防壁)을 쌓아 집의 격조를 더 높인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 12:43, 서울천년 타임캡슐 광장 표시석 >
< 12:46, 북망루(北望樓) >
< 12:49, 타임캡슐 광장 >
우리 전통한옥 5채를 보고는 남산 방향으로 오르니, 서울천년 타임캡슐 광장으로 가는 길이다. 북망루 정자에 먼저 올라 타임캡슐 광장을 한 눈에 내려다보고 내려와 들어간다. 서울 정도(定都) 600년을 기념하는 타임캡슐을 1994년 11월 29일 지하 15m 지점에 매설하였다. 보신각종 모형의 타임캡슐 안에는 서울의 도시모습, 시민생활과 사회문화를 대표하는 각종 문물 600점을 수장함으로써 현 시대의 사회상이 400년 이후인 2394년 11월 29일에 후손들에게 공개토록 했다고 한다.
< 12:57, 서울남산국악당 정문 >
< 12:58, 국악당 옥외 건물 모습 >
< 13:00, 옛 정취를 느끼도록 한 청류정 >
서울남산국악당은 2007년 전통공연예술의 진흥과 국악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건립된 우리나라 첫 국악 전문공연장이다. 한국의 깊이 있는 정체성과 역사적인 전통이 느껴지는 건축양식으로 지어졌다. 양식화된 무대와 편한 객석에서 오늘의 국악과 전통예술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 졌다고 한다. 정원의 서쪽에는 계곡을 만들어 물이 흐르도록 하였고, 주변에는 청류정을 비롯한 고풍의 정자들을 만들어 선조들이 유유자적하였던 남산 기슭의 옛 정취를 한껏 느끼도록 조성해 놓았다.
< 13:12, 필동의 맛집 필동면옥 >
< 13:23, 맛있기로 소문난 평양냉면 >
< 13:40, 충무로역 1번 출입구에서 전철타고 귀가 >
2부 순서로 진행한 한국의 집과 남산골 한옥마을 관광을 마치고, 뒤풀이는 필동에 왔는데 아니 들릴 수 없는 맛 집 필동면옥을 찾아간다. 젊은 시절에 몇 번 들렸을 뿐 최근에 오지 않아, 골목(한국의 집)따라 한참을 내려오는데 어색하다. 한옥마을 연못가에서 행동식을 했기에, 맛있는 냉면 한 그릇씩(10,000원) 주문한다. 기타 메뉴인 만두(10,000원)와 수육(25,000원)은 다음 기회에 맛보기로 한다. 들어 갈 때 대기 줄 보다, 나올 때 줄이 더 길다. 그만큼 소문난 맛집임을 입증한다.
‘16. 7. 30(土) 남산골 한옥마을과 한국의집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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