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은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늘 간직하고 있는 민족의 영산이다. 애국가의 첫머리에 나오 듯,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산이기도 하다. 20~30년 전만 해도 주위의 지인들이 간혹 백두산에 다녀왔다고 하면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여행사, 산악회 등이 많이 주관하고, 교통수단도 비행기외 선박까지 있어 다녀오기가 수월해졌다. 당시의 부러웠던 마음과 언제 가보나 하던 기대감을 그대로 가지고 아내와 함께 산악회를 따라 나선다.

                  < 9:56(한국시간), 인천공항 이륙 후 >

                  < 9:56(이후 현지시간), 대련공항 도착 >

                     < 11:17, 대련 시내의 코리아타운 >

  장마전선이 북상한다는 예보와 함께 비가 내리는 가운데 공항으로 출발(6:20)한다. 공항 미팅시간(7:40)에 산방에서 보던 일행들을 반갑게 만난다. 일행은 총 25명인데, 이중 처음 보는 이도 11명이나 된다. 소형비행기(200여석규모)에서 본 서해 바다의 배들은 하얀 점으로 보인다. 출발(9:40)한 비행기는 이륙하여 대련공항까지 50분이 소요된다. 제주도 가는 거리와 비슷하다. 기내의 간단한 아침식사에 이어서 점심을 위해 코리아타운으로 간다.

                         < 11:18, 한식당에서 중식 >

                         < 12:06, 옛 고구려의 비사성 >

                           < 14:13, 고속도로 휴게소 >

  시차는 1시간이 늦다. 대련은 일정 중 제일 큰 도시로, 공항에서 코리아타운까지 30여분 걸린다. 된장찌개, 잡채, 콩나물무침 등의 맛있는 식사가 여행 기간 중 유일한 한식이었다. 옛 고구려의 비사성(660m)이 차창가로 보이면서 이곳까지 우리의 땅 이었음을 말해준다. 이곳에서 백두산까지의 거리는 편도 1,000km, 이틀 동안 버스로 가야한다. 단동까지는 고속도로(시속 80km)가 있어 쉽게 도착한다. 휴게소는 통행하는 차량이 없어 파리만 날린다.

                       <15:36, 월량도 가는 다리 >

                      < 15:38, 멀리 보이는 북한 땅 >

                   < 15:42, 압록강 단교(斷橋)와 현 다리 >

  단동(丹東)에서 제일 큰 섬인 월량도로 가는 다리가 압록강이 시작됨을 알린다. 압록강은 차창 밖으로 보며 지나고, 백두산에서 돌아 올 때 숙박과 압록강 관광을 한다고 한다. 넓은 대륙의 중국에서 차량을 타고 이동하는 소요시간의 단위는 시간이 아니고, ()수 라 한다. 오늘 대련에서 집안까지의 8시간 이동은 보통이라고 한다. 압록강 건너편 멀리 보이는 곳이 북한의 신의주다. 6.25당시에 끊어진 압록강 단교 뒤로 현 다리(차량, 철교 겸용)가 보인다.

                      < 15:44, 강 건너 위화도 >

                     < 15:46, 전시용 북한 별장 >

                  < 15:48, 단동 강변의 고층 아파트 >

  고려 말 요동 정벌에 나섰던 이성계가 회군하여 이씨조선을 세운 계기가 되었던 위화도가 강 건너에 있다. 전시용으로 지은 북한의 별장(밤에도 불이 켜지지 않음)이라는 설명에 괜히 서글퍼진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중국의 압록강 강변에는 고층 아파트와 빌딩들이 즐비하다. 압록강을 오른쪽에 두고 한동안 같이 따라 간다. 강폭이 좁아져 있는 곳에는 철조망을 처서 도강에 대비하고, 북한에 민둥산들이 많은 것은 심각한 식량난을 겪고 있음을 대변한다.

                     < 18:09, 길가의 산간 옥수수 밭 >

                     < 18:09, 모가 자라는 산간의 논 >

                  < 20:12, 집안의 용봉각 술집(저녁식사) >

  단동을 벗어나자 산악지대로 접어들면서 산허리를 굽이굽이 돌며 산과 강, 그리고 마을을 지난다. 단동 이후부터는 중간에 휴게실도 없어, 화장실은 주유소를 이용하고, 급하면 길가에서 용무를 마쳐야 한다. 한 주유소 앞에 내려 잠시 쉬는 동안 산간의 옥수수 밭과 모가 자라는 풍경을 보니, 우리나라 산골이라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집안(集安)에 밤늦게 도착하니, 예약된 식당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제부터는 모두 현지식이라 한다.

                       < 5:35, 취원호텔 전경(첫날) >

                     < 5:36, 고구려 유적지 공원 표시석 >

                    < 5:38, 공원 입구는 발굴된 바위들로 >

  어제 석식이 끝나고 인근에 있는 취원호텔에 여장을 풀고, 중국에서의 첫날밤을 보낸다. 밤에는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시청이 옛날 황궁 터 이었다고 하여 가보고 싶었지만 피곤해 쉬기로 한다. 시차가 1시간 늦어서인지 일찍 훤해져 새벽녘 일찍 일어난다. 도로 건너편에 있는 고구려 유적지 공원을 아내와 함께 새벽 산책에 나선다. 입구에 세워 놓은 바위들은 국내성 성벽의 기초가 되었던 바위들로 발굴과정에서 나왔다고 한다.

                    < 5:42, 국내성 역사 안내 석 >

                  < 7:22, 호텔 창에서 본 공원 풍경 >

                     < 8:06, 환도산성 표시석 >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 국내성임을 기념하여 조성한 공원이며, 이곳에서 평양성으로 수도를 이전했다고 중국어 및 영어로 설명하고 있다. 비에 젖고 오래되어 글이 잘 보이지 않는다. 주몽이 건국한 첫 수도 졸본성은 이곳에서 70km~80km 떨어져 있다고 한다. 이튿날부터 일정(모닝콜:6)이 비슷하게 시작(출발:730)된다. 전시에 이용한 고구려에서 제일 큰 환도 산성으로 간다. 어제는 맑았는데, 서울의 비가 북상했는지 조금씩 내린다.

                      < 8:10, 옛 산성의 흔적 >

                     < 8:16, 나무 전망대와 성곽 >

                   < 8:34, 입구에 있는 화장실 내부 >

  국내성(성곽:2,400m)이 평지에 있어, 전시에만 황궁을 옮겼던 환도산성(성곽:6,300m)이다. 3면의 높은 산을 이용하고, 1면의 평지만 성을 쌓고 방어했다고 한다. 그러나 산을 타고 온 적에게 두 번이나 함락된 아픔도 있다. 주몽의 아들 유리왕 때 도읍을 국내성으로 옮겨 429, 평양성에서 239년을 보내어 고구려의 역사는 700여년이 된다고 한다. 입구의 공중 화장실은 재래식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 한동안 재미있는 모두의 화제 거리가 된다.

                      < 9:12, 광개토대왕릉 입구 >

                    < 9:20, 광개토대왕릉 내 이정표 >

                    < 9:21, 통로의 가로수 비술나무 >

  새벽에 산책하였던 고구려 유적지 공원은 시내에 있어서인지 잘 관리가 되고, 옛날에 고구려 땅이었다는 것도 자세히 설명한 것을 보면, 섬과 대국의 국민성이 자연스럽게 비교가 된다. 그러나 광개토대왕 유적지는 대조적으로 잡초가 무성하고, 능 자체도 방치되어 있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이정표의 한글 표시는 대부분 이곳을 찾는 이가 우리나라 관광객뿐이라고 한다. 우산 모양을 한 특이한 가로수의 이름을 물으니 비술나무라고 한다.

                        < 9:23, 능 오르는 계단 >

                     < 9:24, 공개하여 출입이 가능한 입구 >

                         < 9:25, 묘 내부의 모습 >

  능을 공개하여 안에까지 들어갈 수는 있지만, 입구부터 속까지 허술하기만 하다. 우리나라에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관리를 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마음이 안타깝다. 고구려에서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긴 왕인데, 묘가 남의 나라에서 서러움을 받고 있다. 중국에서는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의 시호를 따라서 호태왕비(好太王碑)로 부르고 있다. 안치된 무덤의 왼쪽은 왕비이고, 오른쪽이 대왕의 자리였다고 한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T.V드라마 생각이 난다.

                   < 9:41, 광개토대왕비 앞에서 >

                 < 9:55, 호태왕비 안내 표시석과 비각 >

                  < 10:02, 입구에 정차해 있는 삼륜차 >

  새로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투명한 대형 비각 속에 6.39m 높이의 화강암 비가 우뚝 솟아 있다. 이 비는 아들인 장수왕이 아버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하나의 돌에 1,775자의 비문이 음각 되었다고는 하나, 세월이 흐른 현재는 금이 가서 보수한 흔적도 있고, 문자도 1,590자 정도만 보인다고 한다. 비문에는 고구려의 건국, 광개토대왕의 업적, 능을 보존하는 법 등이 새겨져 있다. 어린 시절에 보았다고 기억되는 낡은 삼륜차가 있다.

 

                       < 10:23, 귀족 5호 능 >

                   < 10:23, 고구려 귀족 5호 능 표시석 >

                   < 10:24, 고구려 귀족 5호 능 입구 >

  우리가 흔히 보아오던 커다란 봉분들이 모여 있는 가까운 거리의 고구려 귀족 5호 능으로 이동한다. 고구려 귀족의 5개 묘 중 1개만을 개방한 오희묘 5호안으로 들어간다. 지하 통로를 따라 깊이 들어가면 높이가 5m 정도 되는 화강암의 석실이 나온다. 고구려 고분 벽화가 여기에 있다고 하는데, 주위가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는다. 물론 사진 촬영이 금지 되어 있는데, 이를 모른 관람객에게 하는 안내원의 제지가 조용한 분위기를 깨트린다.

                   < 10:27, 5호 능 앞 기념품 가게 >

                      < 10:47, 장군총 표시 석 >

                      < 10:48, 장군총 전면에서 >

  기념품가게를 다녀 광개토대왕릉 입구로 나와, 인근에 있는 장군총으로 향한다. 발굴 당시는 이름 모를 장군의 묘로 알아 장군총이라 불리었으나, 사후에 고구려 20대 장수왕의 묘인 것을 알았다고 한다. 장수왕은 수도를 국내성에서 평양성으로 옮기고, 평양성에서 운명(殞命)하며 이곳에 묻어 달라 했다고 한다. 7층의 단을 쌓고, 그 위 4층의 단 한가운데에 석실을 두었다. 돌을 쌓을 때 밑의 돌에 홈을 파서 밀려나지 않는 기법을 사용했다.

                   < 10:54, 장군총 후면과 계단 >

                   < 10:54, 장군총 옆 고인돌 >

             < 13:07, 통화(通化)의 한 식당(중식) >

  이집트 여행 시 보았던 피라미드의 축소형을 보는 듯하다. 후면에 계단을 보니 전에는 올라갈 수 있었는데, 장군총의 보호를 위해 금지했다고 한다. 옆에 있는 고인돌은 우리가 흔히 보아오던 표준형 같다. 고구려의 유적지의 관람을 모두 끝내고, 통화를 거쳐 오늘의 목적지인 송강하를 향해 출발(11:20)한다. 이제는 버스를 타고 가기만 하면 된다. 버스 안에서 간단한 음주가 차타는 지루함과 시장기를 잊게 해준다. 통화에 도착하여 점심을 한다.

                  < 13:08, 통화 현지식 식단 >

               < 13:40, 식당 건너편 주상복합 아파트 >

                      < 16:54, 중간 휴게소 >

  숙소는 대부분 호텔이라는 입간판을 사용해서 인지, 일정표상 조식은 호텔식인데 서양식이 아닌 중국식 뷔페이다. 실망이 되지만 현지식도 우리나라 관광객이 많다보니, 우리의 입맛에 맞추어 가는 듯하다. 옛날같이 입에서 거부를 하지 않으니 천만다행이다. 앞으로도 계속 현지식이니, 빨리 적응해 가는 것이 자신에게 편하다. 통화란 지역 내에 집안이 포함되어 있듯이 도시 규모가 크다. 비록 열악한 휴게소이지만 중간에 있어서 반갑다.

                   < 18:40, 송강하 천사호텔(이튿날) >

                     < 18:40, 호텔 앞 가건물 식당 >

                 < 18:42, 장소에 비하여 맛있었던 식단 >

  어제 저녁에도 그러했지만 노을이 지는 산골 마을을 지날 때는 주민들뿐만 아니라, 오리 등 집에서 기르는 동물들이 차도까지 나와 갈 길 바쁜 버스를 쉬도록 한다. 송강하에서 숙소를 찾느라 알바 하는 중에도 백두산 멧돼지 새끼들이 나와 인사하고 지나간다. 숙소 앞 식당은 가건물로 공사현장의 함밥집을 연상케 한다. 분위기와는 달리 음식이 대체적으로 맛있다는 평이다. 내일 백두산 트레킹을 위해 인솔대장께서는 밤에 술을 자제해 달라고 한다. 그러나 모두가 설레는 마음으로 한방에 모여 내일의 완주를 위한 건배를 수차례 한다. 미리 준비한 산우의 멋진 브리핑으로 마감을 한다.

 

    


 

                                      20116월 백두산을 오르기 전에...... 









Posted by 프코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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