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탐방 일시: 2015816()

2) 탐방 코스: 금곡역마을버스(64번뿐)영락교회 공원묘지앞(하차)광해군묘

                     →성묘사릉일반버스(23번외 다수)홍유릉(하차)홍릉영원

                     →유릉(금곡역)

3) 탐방 시간: 910~1350(4시간40),        7.0km추정

4) 탐방 인원: 아내와 함께

5) 날 씨 : 맑 음

6) 탐방 후기

  최근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비운의 왕 광해군 묘소를 가려고 인터넷 검색을 한다. 조선 27대 왕 중에 묘호(廟號)를 받지 못한 두 임금은 연산군과 광해군 이다. 서울 방학동 북한산 둘레길에 있는 연산군 묘는 몇 번 갔지만, 광해군 묘는 처음이다. 연산군 묘와는 달리 광해군 묘는 공개(2013.1.1.~2022.12.31)를 제한하고 있다. 사전 출입허가 신청서를 1주일 전에 e-mail로 작성해 보낸다. 방문사유를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국가지정 문화재 역사탐방이라고 거창하게 적었다.

                      < 광해군묘, 사릉, 홍.유릉 위치도 >

                    < 9:10, 금곡역 1번 출구로 나와 >

                < 9:20, 40분마다 운행되는 마을버스 64>

  접수한 사릉관리소는 서류를 동구릉의 동부지구 관리소로 보내 결재를 받는다. 방문사유를 학술적으로 써야 승인이 떨어진다고 하여 신경 쓴 문구다. 작성할 서류는 3장으로 허가신청서, 방문사유, 문화재 보존서약서가 있다. 아내와 함께 11시 방문으로 했기에, 일찍 상봉역을 출발(8:35)해 사릉을 먼저 들려 보고는 11시에 광해군묘를 찾아 가기로 한다. 가는 도중에 묘소의 출입문을 열어줄 직원의 전화가 온다. 11시면 순찰을 마감할 시간으로, 앞당겨 오라하여 탐방 순서를 바꾼다.

                   < 9:20, 영락교회 공원묘원 정류장 >

                    < 9:29, 묘원 안, 언덕을 올라 >

                < 9:37, 광해군 묘 입구 문을 열고 - 동부지구 관리소 >

  사릉 가는 버스는 많지만, 광해군묘 가는 버스는 40분에 1대씩 다니는 마을버스64(금곡봉인사)뿐이다. 금곡역 1번 출구로 나가, 길 건너 정류장에서 기다리니 운 좋게 바로 기다리던 버스(9:10)가 온다. 사릉 전 우측 마을길로 접어들자, 곧 영락교회 공원묘원 정류장이다. 공원묘원 정문에서 5분정도 기다리니, 순찰할 직원이 자전거를 타고 와 만난다. 자전거는 밑에다 두고, 묘원 안의 경사 급한 700m의 언덕을 함께 어렵게 오른다. 출입을 제한하는 펜스의 출입문을 열어준다.

                 < 9:37, 국가지정 문화재 공개제한 안내문 >

              < 9:40, 사적363호인 조선 제15대 왕 광해군(光海君) 묘 >

       < 9:40, 썰렁한 광해군과 왕비 문성군부인(文城郡夫人) 류씨의 묘 >

  하루에 오전, 오후 두 번 순찰을 돌 때, 출입 허가를 받은 사람만 문을 열어 준다고 한다. 오늘은 우리 부부 2명뿐인데, 그저께(814) 왔으면 좋았을 텐데 하며 아쉬워한다. 매년 음력 71일은 광해주 승모회에서 제사를 올리는데 올해도 100여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광해군은 선조의 뒤를 이어 1608년 왕위에 올라 재위 중에 전화 복구, 궁궐의 중건, 대동법 시행, 탁월한 대외정책을 펴는 등 많은 치적을 남겼으나, 당쟁에 휘말려 광해군 15(1623) 인조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난다.

               < 9:43, 참배를 마치고 돌아서는 발길이... >

        < 9:47, 문은 닫고 성묘(成墓) 가는 길에 펜스 너머로 본 묘소(줌) >

          < 9:50, 직진하여 2번째 묘원 전, 우측의 산 속 지름길로 >

  폐위 된 후 강화를 거쳐 제주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다가 인조 19(1641) 67세로 돌아 가셨다. 묘는 대군의 예에 따라 장사를 지냈기 때문에 뒤에는 석물이 없고, 앞에는 상석, 망주석, 문인석만 초라하게 배치되어 있다. 방학동에 공개하고 있는 연산군 묘보다 더 초라한 것 같아, 뒤돌아서는 발길이 무겁기만 하다. 문을 닫고 어머니 묘소인 성묘로 가는데도 자꾸 뒤돌아보게 된다. 올라오던 도로로 조금 더 직진하면, 두 번째 묘원을 바라보는 위치에서 우측 산속으로 진입하여 내려간다.

                 < 9:58, 산길을 내려와 삼거리에서 우측 >

  < 10:16, 사적 365호인 성묘(成墓, 광해군의 어머니, 선조의 후궁인 공빈 김씨의 묘) >

               < 10:18, 봉분 주위는 석양과 석호, 난간석 등이 >

  일반 묘들이 있는 산비탈을 내려오니, 마을버스가 다니는 삼거리이다. 우측 성묘 가는 이정표 따라 동네 길로 올라간다. 뒷산에 모셔진 성묘는 사적 365호로 조선 14대 선조의 후궁인 공빈 김씨의 묘이다. 공빈은 재색이 뛰어나, 선조의 총애를 받으며 임해군(1574)과 광해군(1575)을 낳았다. 봉분 주위는 석양과 석호 4쌍과 난간석, 석마, 망주석, 문인석, 무인석 등 아들이 임금으로 있을 때 조성해 왕릉의 격식을 갖추었다. 보호 펜스는 없지만, 공개제한 지역으로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 10:21, 성묘 참배를 마치고 >

             < 10:23, 고려개국 공신 문하시중 풍양 조씨 시조 묘 >

               < 10:57, 사능으로 가는 송능 삼거리(송능교) >

  성묘 바로 아래는 고려 개국공신 문하시중 풍양 조씨의 시조 묘가 있다. 광해군이 폐위되지 않았다면, 왕의 어머니로 이렇게 모셔지지 않았을 텐데, 안타까운 마음으로 내려온다. 더 올라가면 형인 임해군의 묘도 있다는데, 문화재청 관리 대상이 아니어 후손들이 돌보고 있다고 한다. 친절한 직원 어르신의 배려로 성묘 참배까지 마치었다. 도로 따라 내려오면서 영락교회 묘원 정문(10:36)을 지나자, 마을 전체가 소들을 키우는 축산단지이다. 송능 삼거리로 나오자 큰 차도와 연결된다.

                  < 11:02, 사릉 입구(정문) - 동부지구 관리소 >

            < 11:03, 사릉 안내도(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선명함) >

              < 11:07, 사릉(思陵, 제6대 단종의 왕비 정순왕후 송씨의 능) >

  광해군 묘부터 오라하여 성묘까지 보고, 걷는 거리도 짧아 졌다. 사릉이 가까운 송능 삼거리 이정표를 보니, 광해군묘 2.3km, 성묘 2.5km, 안빈묘 1.7km를 표시하고 있다. 왕복 한다고 하여도 5km가 조금 넘으니, 등산객에게는 걸을 만한 거리다. 관리하는 묘 중에 가까운 안빈묘는 17대 효종의 후궁 안빈 경주이씨의 묘로 생략한다. 사릉 입장료는 성인 1,000원이나, 광복 70주년을 맞아 3일간(8.14~8.16) 무료개방이다. 비치해 놓은 부채는 더위와 벌레를 쫓는데 요긴하게 사용한다.

                  < 11:07, 가까이 다가서서 본 사릉(思陵) >

                      < 11:16, 사릉 홍살문 앞에서 >

                    < 11:43, 릉내 소나무 숲을 거닐어 >

  사릉은 조선 6대 임금 단종의 왕비 정순왕후 송씨의 능이다.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긴 뒤 죽임을 당하자, 왕실을 떠나 작은 집을 지어 평생 흰옷만 입으면서 고기와 생선은 먹지 않고 수절하였다고 한다. 왕후가 후사 없이 승하함에 단종의 누이 경해공주의 시가인 해주 정씨 가의 묘역에 장례하고 제사도 정씨가에서 지내왔다. 1698년에 단종이 왕으로 복위되면서 정순왕후라 봉해졌고, 평생 단종을 생각하며 일생을 보냈다하여 능호를 사릉(思陵)이라 붙였다는 슬픈 이야기이다.

              < 11:48, 백송나무가 있는 조선왕릉 생태 전시관 >

                  < 12:37, .유릉(.裕陵) 정문 - 동부지구 관리소 >

              < 12:37, 정문 앞에 있는 홍.유릉 역사 문화관부터 >

  사릉은 홍살문 앞에 서면 능 전체가 한눈에 들어 와, 가까이 안 들어가도 되지만, 홍살문을 지나 참도를 걸어 제향공간인 정자각, 비각 등을 살펴본다. 쉼터에서 첫 휴식시간을 가진 뒤, 역사 문화관과 소나무 숲 사이로 산책하듯 둘러본다. 순찰을 돌고 와서도 이곳저곳 다니며 근무하시는 어르신께 감사를 드립니다. 정문 건너편 양편으로 거리가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23번 버스를 타고 금곡의 홍.유릉 입구에서 내린다. 정문 앞에 있는 역사 문화관에 들려 왕릉에 대한 공부부터 한다.

            < 12:46, 조선왕릉 분포도(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선명함) >

              < 12:51, .유릉 안내도(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선명함) >

           < 12:56, 홍릉(洪陵, 제26대 고종과 명성황후 민씨의 합장 릉) >

  비디오를 통해 왕릉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한동안 보고는 전시물도 둘러본다. 시선을 끄는 것은 조선 왕릉 분포도이다. 하나하나 체크해 보니, 젊었을 때에 다녀 온 곳도 있지만 아직 가보지 않은 곳도 많다. 조선 왕릉이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에 등재(2009. 6.30)도 되었고 하니, 순차적으로 전부 돌아보고 싶다. 사릉은 처음이었지만, .유릉은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 학습적인 차원에서 함께 다녀간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홍릉과 유릉이 분리되어 있어, 좌측의 홍릉(洪陵)부터 들린다.

                    < 12:58, 홍릉 홍살문 앞에서 >

                   < 12:59, 홍살문을 지나 가까이서 >

                   < 13:01, 측면에서 본 능침() >

  홍릉은 조선 26대 고종과 명성황후의 합장 릉이다. 고종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둘째 아들로 철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익종의 비인 신정왕후 조씨의 지명으로 왕위에 올랐다. 어린나이에 즉위하여 한동안 아버지가 국정을 운영하기도 했다. 1873(고종 10) 친정을 선포, 1897년 대한제국 수립을 선포하고 황제에 올랐다. 명성 왕후는 러시아와 손잡고 일본세력을 추방하려하자, 위기를 느낀 일본에 의해1895년 시해되었다. 정자각에 가려 능침이 보이지 않아, 측면에서 줌으로 찍는다.

                   < 13:01, 영원(英園)가는 임시 통행로 안내판 >

                    < 13:03, .유릉 바깥에 있는 산책로 >

                      < 13:06, 영원(英園)입구 정문 >

  전에는 없던 이름도 생소한 안내판이 발길을 돌리게 한다. 영원(英園)은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인 의민황태자(英親王, 1897~1970)와 의민황태자비(李方子, 1901~1989)의 합장묘이다. .유릉 밖으로 나갔다가 관람을 마치고, 들어 올 때는 입장권을 제시하여야 한다. 바깥 산책로를 따라 조금 걸으면, 영원으로 입장하는 정문이 있다. 올해부터 일반에게 공개하는데, 관리 인력이 부족해서 오래 개방하지는 못 할 것 같다고 한다. 조선 왕릉의 형태를 그대로 갖추어 가까이 볼 수 있다.

       < 13:08, 영원(英園,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과 비 마사코(方子)의 합장 묘) >

             < 13:14, 왕릉의 형태를 그대로 갖춘 능침 공간 >

             < 13:25, .유릉을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는 쪽문 >

  영친왕은 일제의 강압으로 일본 유학을 가게 되고, 1920년 일본의 정책에 따라 일본 황족인 왕의 첫째 왕녀 마사코(이방자)와 정략결혼을 한다. 1945년 일제가 패망하자 귀국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1963년 귀국해 197073세로 별세한다. 이방자 여사는 장애인 사회복지시설인 영휘원을 설립하여 사회사업을 하다 198989세로 별세한다. 위쪽에 위치한 영원 능침 바로 옆에는 둘째 아들 이구(1931~2005)의 묘, 회인원이 있다. 유릉을 보기위해 나갔던 쪽문을 다시 들어온다.

                    < 13:30, 연지를 바라보는 벤치에서 휴식 >

                  < 13:45, 홍릉에서 유릉으로 넘어가는 언덕 >

 < 13:48, 유릉(裕陵, 제27대 순종과 원후 순명황후 민씨, 계후 순정황후 윤씨의 합장 릉) >

  영원에서 나와 산책로 따라 올라가면 덕혜옹주(德惠翁主)의 묘가 있다는데 식사시간이 많이 지나 포기한다. 옹주(1912~1989)는 고종과 귀인 양씨 사이에 태어난 딸로 유학명분으로 강제로 일본으로 보내져, 일본 백작과 정략결혼까지 한다. 정신분열 증세를 보여 이혼하고 귀국하여 창덕궁 낙선재에서 별세한 비운의 옹주이다. 연못 중앙에 둥그런 섬을 만들어 놓은 연지를 바라보며 쉬어간다. 홍릉에서 낮은 언덕을 넘어, 조선 왕릉 중에 유일하게 동봉 삼실 합장릉인 유릉(裕陵)을 관람한다.

               < 13:50, 정면에서 보는 유능(능침은 왼쪽 지붕 끝 쪽에) >

                  < 14:08, .유릉 입구에 있는 뒤풀이 음식점 >

                      < 14:26, 주문한 전복 만두전골 메뉴 >

  유릉은 조선 27대 마지막 왕인 순종(純宗, 1874~1926)과 원후 순명황후 그리고 계후 순정황후의 합장 능이다. 순종은 고종과 명성황후의 둘째 아들로 고종의 뒤를 이어 1907(~1910)에 즉위했다. 1926년 창덕궁 대조전에서 승하했으며, 국장일에 맞춰 6.10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순명황후는 순종이 즉위하기 전에 승하하였고, 계후 순정황후는 순종과의 사이에 자식을 두지 못했다. 고종과 순종은 대한제국의 황제로 호칭된 황제릉으로 기존 조선 왕릉과 석물의 위치와 종류, 숫자가 다르다.

  조선 왕족의 무덤은 모두 119기이며, 이 중 능이 42, 원이 13, 묘가 64기이다. 신분에 따라 그 명칭을 달리하여, ()은 왕과 왕비, ()은 왕세자와 왕세자빈 또는 왕의 사친(私親), 그 외의 왕족의 무덤은 묘라고 한다. 42기 왕릉 중에 27기 왕의능 이라도 우선 돌아보며 역사를 재인식 하는 기회를 갖으려 한다. 이북 개성에 있는 정종, 오늘 돌아본 광해군, 고종, 순종, 최근 둘레길을 돌며 다녀 온 연산군, 명종(강릉), 세조(광릉)을 제외한 20기 세계문화유산을 답사키로 한다.

   

Posted by 프코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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