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탐방 일시: 2015913()

2) 탐방 코스: 화랑대역 4번 출구태릉(문정왕후)강릉(명종과 인순왕후)버스

                    →화랑대역돌곶이역의릉(경종과 선의왕후)돌곶이역길음역

                    →택시정릉(신덕왕후)흥천사성신여대 4번 출구

3) 탐방 시간: 1035~1755(7시간20),         11.0km추정

4) 탐방 인원: 아내와 함께

5) 날 씨 : 맑 음

6) 탐방 후기

  시내에 있는 조선왕릉 중에 오늘은 중부지구 관리소 산하에 있는 공릉동의 태릉(泰陵)과 강릉(康陵), 석관동의 의릉(懿陵), 정릉동의 정릉(貞陵)을 간다. 태릉 이외는 잘 알려지지 않아, 대부분 잘 모르고 있는 왕릉이다. .강릉은 작년에 불암산 둘레길을 옛 직장 모임 회원들과 돌면서 다녀왔다. 최근에 다녀왔기에, 다녀 온 것으로 대체할까 망설이다가, 이번 왕릉 탐방이 아내와 처음부터 같이 하고 있기에 다시 간다. 5호선에서 7호선, 6호선으로 환승하여 화랑대역 4번 출구로 나온다.

                < 조선 왕릉 위치도(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선명함) >

                 < .강릉 안내도(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선명함) >

                      < 10:35, 화랑대역 4번 출구 >

  왕릉을 탐방하기 시작한지 6일째, 이제는 중반을 넘어 어느새 종반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처음에는 거의 비슷한 왕릉이 40곳이나 되는데, 어떻게 다 돌아 볼 수 있을까 걱정도 했다. 하나 둘 돌아보면서 시대에 따른 능마다 공간의 크기, 문인과 무인의 조각상태, 석물의 배치 등의 차이점들이 눈에 들어온다. 왕릉에 배치된 석물들의 크기와 조각양식, 크기에 따라 역사의 흐름도 읽을 수 있다. 이씨조선의 왕의 계보와 사연들을 미리 공부하고서, 능을 찾아 재조명 해보는 것도 재미있다.

                      < 10:45, 옛 철길이 숲길 산책로로 >

                       < 11:00, 태릉입구 및 주차장 >

              < 11:02, 매표소(입장권은 강릉 입장시 재사용) >

  화랑대역에서 서울여대 방향으로 가는 길옆의 옛 철길은 산책로가 되어, 주민들이 아이들과 함께 거닐며 옛 추억을 떠 올리며 이야기를 나눈다. 버스 타기에는 가깝고거닐기엔 다소 먼 거리이다. 육군사관학교 갈림길을 지나, 태릉 입구에 25여분 지나 도착한다. 입장요금은 다른 왕릉과 동일하게 1,000원이며, 노원구 지역주민은 50%할인 되고, 경로우대는 무료이다. 강릉과의 숲길 산책로가 지금은 개방되지 않는 기간이기에, 강릉을 입장하려면 입장권을 다시 보여주어야 한다.

                < 11:15, 조선왕릉 전시관(중부지구 관리소) >

                 < 11:19, 능으로 가는 울창한 소나무 숲길 >

            < 11:19, 태릉(泰陵, 11대 중종의 제2계비 문정왕후 윤씨의 능) >

  입구에 있는 조선왕릉 전시관에는 국장 절차와 조선 왕릉의 건설 방법, 부장품, 조선 왕릉에 담긴 역사와 문화, 산릉 제례를 포함한 왕릉 관리 등을 설명하고 있다. 지금까지 다녀 본 왕릉의 역사 문화관 중에서는 제일 많은 자료들과 함께 설명이 되어 이해하기 쉽다. 울창한 소나무 숲 진입로 따라 태릉 홍살문을 찾아 간다. 단릉인 문정왕후(文定王后, 1501~1565)는 중종의 제1계비인 장경왕후가 1515(인종 10) 인종을 낳은 뒤 산후병으로 7일 만에 승하하자, 1517년 왕비로 책봉되었다.

                        < 11:21, 태릉 홍살문 앞에서 >

                  < 11:24, 다른 능에 비해 석물들이 큰 능침 공간 >

                      < 11:26, 강릉으로 가는 숲길과 안내문 >

  중종과의 사이에 낳은 아들 명종이 12세에 왕위에 오르자, 어린명종을 대신하여 8년간 수렴청정 한다. 조선시대 왕비 중에 최고의 권세를 누렸다는 문정왕후는 중종의 묘까지 옮기면서 함께 묻히기를 원했으나, 지대가 낮아 홍수 때에 물이 찬다는 이유로 아들에 의해 아들 옆에 묻혀 있다. 석물들은 권력을 과시하듯, 다른 능에 비해 1.5배에서 2배가량 크다. 왕후의 아들이 묻혀 있는 강릉과는 원래 동일한 능역 안에 있지만, 개발 등의 여파로 완전히 분리된 상태로 입구가 서로 다르다.

                   < 11:27, 역사가 있는 울창한 소나무 숲 >

               < 11:28~12:03, 소나무 아래 평상에 앉아 휴식 >

               < 12:19, 밖으로 나와 태릉선수촌 정문을 지나 >

  봄(4~5)과 가을(10~11)에만 개방되는 숲길은 작년에 왔을 때는 그시기에 맞춰 와서 거닐 수가 있었다. 왕릉의 숲속을 20여분 거닐면서, 깊은 산속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홍살문 아래 넓은 평지의 소나무 숲은 신림(神林)으로 여겨질 만큼 역사가 오래되고 울창하게 우거져 있다. 도시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소중한 생태 문화적 자원이라고 한다. 곳곳에 놓인 평상 중 한곳에서 긴 대화를 나누며 쉬어간다. 정문으로 나와 차도 따라 태릉선수촌도 지나면서 20여분 걷는다.

                  < 12:27, 삼육대학교 정문 가까이 있는 강릉 입구 >

                    < 12:29, 홍살문 전에 있는 금천교(禁川橋) >

                 < 12:30, 강릉(康陵, 13대 명종과 인순왕후 심씨의 능) >

  그 때 능선을 넘어 가는 숲길은 좋았는데뜨거운 뙤약볕을 맞으며 차도로 걷자니 힘이 든다. 태릉선수촌 정문을 지나, 삼육대학교 정문 전에 강릉으로 들어가는 작은 출입문이다. 태릉에서 구입한 입장권을 보여주며, 태릉에도 없었던 재실(齋室)이 여기에도 없어 관리 직원에게 묻는다. 오래전에 화재로 유실되어 없다고 한다. 명종(明宗, 1534~1567)은 제11대 중종의 둘째 아들로 1545년에 인종이 승하하자 12세 나이로 왕위에 올라, 20세까지 어머니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을 받았다.

                < 12:34, 능침까지 오르도록 유도하는 안내표시 >

                < 12:40, 능침까지 올라서 본 능침과 석물들 >

                     < 12:41, 능침 앞에서 인증 샷 >

  1553(명종 8)수렴청정이 끝나 외척을 견제하고 고른 인재를 등용에 노력했으나 국정은 혼란했다. 1563년 외아들 순회세자를 잃고, 2년 후에 어머니 문정왕후마저 세상을 뜨자 병약했던 명종은 병을 얻어 1567(명종 22) 승하한다. 인순왕후(仁順王后, 1532~1575)1543년 경원대군(명종)과 가래를 올리고 1545년 명종이 즉위하면서 왕비로 책봉되었다. 정자각 왼쪽으로 능침에 오를 수 있는 동선을 안내하고 있다. 오늘 4곳 왕릉 중 유일하게 능침에 올라 석물들을 두루 살펴본다.

                    < 12:46, 곡장 뒤에서 바라본 강릉 능침 >

                     < 13:27, 6호선 돌곶이역 7번 출구 >

                   < 13:46, 무봉이 순대국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

  태.강릉의 탐방을 마치고(12:57)는 석관동의 의릉을 가기위해, 삼육대 정문 앞 육교 아래에 있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화랑대역으로 회귀한다. 차도 따라 걸어온 시간만도 45분이나 되기에 일정상 다시 걸을 수가 없다. 화랑대역에서 같은 6호선 상, 3번째 있는 돌곶이역 7번 출구로 나온다. 북한산에서 뻗어 내린 오패산의 한 지맥이 왕릉(의릉)을 감싸고 있는 천장산(141m)를 이룬다. 이 지맥에는 검정돌이 박혀있고, 그 모양이 마치 수수팥떡이나 경단을 꼬지에 꿰어 놓은 형국이다.

                  < 의릉 안내도(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선명함) >

                  < 14:14, 의릉 안내 표시(옆은 소공원이 위치) >

                       < 14:16, 의릉 정문 및 매표소 >

  그래서 이 지역 이름이 돌곶이(한문: 석관동)된 유래가 지하철 입구의 표시석에 있다. 출구로 나와 직진하다가 중간에 있는 무봉리 순대국 집에서 점심을 간단히 해결하고 곧장 간다. 건너편 우리은행 석관동 지점 맞은편 전선주의 표시 따라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지름길이다. 의릉 안내 표시가 있는 소공원부터 왕릉 까지도 군사정권 시절 세도를 누렸던 중앙정보부의 땅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이름을 달리하여 내곡동으로 이사해서, 다른 능과 동일한 입장료를 내고 들어갈 수 있다.

           < 14:19, 의릉(懿陵, 20대 경종과 계비 선의왕후 어씨의 능) >

                         < 14:19, 의릉 홍살문 앞에서 >

             < 14:34, 멀리서 본 동원상하릉(同原上下陵)의 능침 >

  경종(景宗, 1688~1724)은 제19대 숙종의 맏아들(어머니는 장희빈)이다. 1720년 숙종이 승하하자 33세로 즉위했으나, 몸이 병약해 아들을 얻지 못했다. 즉위한지 두 달 만에 이복동생인 연잉군(영조)을 왕세제로 삼고 국정을 맡겼다. 4년간 재위한 후 창경궁에서 승하하였다. 선의왕후(宣懿王后, 1705~1730)는 경종의 첫째 세자빈 단의왕후가 1718(숙종 44)승하하자, 같은 해 세자빈에 책봉되었고, 1722(경종 2) 왕비에 책봉되었다. 능역의 폭이 좁아 능을 위 아래로 배치하였다.

                 < 정릉 안내도(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선명함) >

                      < 16:10, 정릉 매표소 및 정문 >

                        < 16:12, 새로 짓고 있는 재실 >

  돌곶이역에서 태릉입구역으로 가 7호선 환승, 다시 노원역에서 4호선 환승해 길음역까지 간다. 성신여대 6번 출구로 나와 아리랑고개 방향에서 버스를 타고 가려 했지만, 택시를 이용하려고 미리 내린다. 택시는 정릉 유원지 방향으로 가다, 좌측 아리랑 고개로 진입하자마자 우측 골목길 주택가 사이로 오른다. 택시비는 3,200원이지만, 시간 있으면 걸어가도 충분할 거리이며 찾기도 쉽다. 정릉 입장료는 다른 능과 동일하고, 오늘 본 3능에 재실이 없었는데, 이곳만 재실을 새로 짓고 있다.

            < 16:15, 정릉(貞陵, 1대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 강씨의 능) >

                      < 16:16, 정릉 홍살문 앞에서 >

                < 16:17, 멀리 높은 곳에 있는 능침을 줌으로 >

  신덕왕후(神德王后, ?~1396)의 가문은 고려의 권문세가로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태조의 원비는 신의왕후였으나 태조 즉위 전인 1391(고려 공민왕 3) 세상을 떴기 때문에 신덕왕후가 조선 최초의 왕비로 책봉되었다. 원비 신의왕후가 낳은 장성한 여섯 아들을 제치고, 자신의 아들 방석(방번, 방석, 경순공주)을 세자로 책봉할 정도로 역량이 뛰어났다. 태조 5년 병환으로 승하하자 태조는 명복을 빌기 위해 흥천사를 세웠다. 참도가「ㄱ」자로 꺾여 있다.

                      < 16:19, 정릉 산책길 안내도 >

                   < 16:20, 쉼터 공간 옆 산책로 따라 오르기 >

                       < 16:25, 등산로에 가까운 오르막이 >

  높은 곳에 위치한 능침으로 오르는 길이 좌측에 있는데, 지금은 통행금지를 시키고 있다. 멀리서 바라보면서 중앙에 위치한 장명등은 고려양식으로 도성 안에 있던 옛 정릉에서 옮겨 왔다고 한다. 쉼터 공간 옆으로 나 있는 산책길 따라 이웃 주민들이 많이 오르고 있다. .강릉 숲길은 개방시기가 아니어 통제되어 있고, 의릉은 나오면서 관리인한테 물으니 있다고는 하는데 실기 했고, 이곳이 오늘 일정상 마지막이기에 긴 코스를 택하여 걷는다. 오르막과 계단이 등산하는 것처럼 힘이 든다.

                < 17:01, 산책로 중에서 제일 높은 쉼터에서 휴식 >

                         < 17:38, 흥천사(興天寺) >

                        < 17:43, 돈암동 방향 흥천사 입구 >

  산책로 중에서 제일 높은 쉼터에서 휴식을 한다. 어제 벌초를 하면서 마신 술이 회 차를 거듭하다보니, 숙취로 인해 오늘은 어려운 탐방 길이다. 산책로 윗부분은 북악스카이웨이 차도(하늘길 걷기코스)와 경계를 이루는 펜스로 마주한다. 정릉 정문에서 흥천사가 350m라는 표시 따라 가파른 골목으로 오른다. 산책로에서 보았던 차도를 건너니, 흥천사가 넓게 자리하고 있다. 태조는 신덕왕후의 명복을 비는 원찰 흥천사를 크게 건립하고, 재 올리는 종소리를 듣고서야 수라를 들었다고 한다.

                  < 17:55, 4호선 성신여대 입구 지하철역 4번 출구 >

               < 18:51, 생소한 이름의 황칠나라 서울본점에서 뒤풀이 >

              < 18:54, 몸에 좋다는 황칠나무가 들어간 닭개장 >

정릉 방향 위쪽에 있는 정문으로 들어 왔는데, 지하철을 타려고 마을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동네 주민이 지하철을 타러 가는데 같이 가자고 하면서, 지름길로 동행하니 빠르다. 정릉을 가기 위해서는 굳이 버스나 택시를 타지 않아도 걸을 만한 거리이다. 황토 흙을 이용한 닭과 오리 요리인줄 알았는데, 옛 부터 우리나라 남쪽에서 자생하는 두릅나무과의 황칠나무가 있다고 한다. , 간장, 당뇨, 오십견, 스트레스, 숙취해소 등에 좋은 효능이 있다고 한다. 간단한 탕 한 그릇을 먹었는데도 오늘 힘들었던 피로가 풀리는 것이 효과가 있는 듯 자주 찾아야겠다.

 

 

Posted by 프코2009
,